2020/06/30 18:08
오늘 에브리타임(대학생들 커뮤니티) 을 들락 거리는데, 치킨 잘못 시켰다고 같이 먹을 사람 찾는 글이 올라왔다. 그냥 치킨을 주고 ㅃㅇ하는 줄 알고 신청해서 가보니, 젓가락을 주는게 아닌가. 같이 앉아서 나눠먹자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자리에 앉았다.
나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조금 있다가 왔고, 같이 둘러 앉아 겸상을 했다 .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고, 한 명은 심지어 17학번 선배셨다.
우리는 오디오가 비지 않게 이런 저런 표면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방금 헤어졌다.
내가 오늘 한 이 경험은 마치, 사이버 공간과 실제 공간의 연결성을 보여주는 경험이었다. 이에 대해 잠시 내가 생각한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사이버 공간은 익명기능과 같이 생초면인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걸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더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기 보단 캐릭터를 만나는 기분이라서, 사람이라는 것이 실감이 안되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카지노에서 돈이 아닌 칩으로 거래를 해서 돈 개념 없이 더 많이 베팅을 하듯이, 우리는 거추장스러운 것 ( 물리적 거리, 대화 내용 기억하기, 옷차림, 위생, 예절, 시선처리 등) 다 필요 없고 오직 '대화'만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을 가진 것이다. 이로 인해 비언어적 소통을 잃고 있긴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소통 방식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전화, 편지 등도 비대면 대화방식이다. 다만 오직 이 소통방식으로만 (한번도 만나지 않고) 사귀는 관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대면 방식과 종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뭐 굳이 말하자면 설문조사 전화나 보이스 피싱 정도?가 있을거다.
이번 1학기를 전면 비대면 강의를 하면서, 비대면으로 사람관계를 맺는 경험을 많이 해보았다. 분명 비대면으로 만난 관계보다 대면으로 만나는 것이 더 많은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어 더욱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비대면으로 만난 관계가 얕아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주로 하던 대면과 유일하게 비교될만한 사항이기 때문이고, 나는 이 자체로 새로운 '인간관계'가 성립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인간관계는 그 소통이 매우 fundamental 한 정보만 주고 받는 만큼 전달되지 않는 부분도 많고, 이미지나 투표 기능과 같이 더 integrate 하게 대화를 해갈 수 있다. 말하자면 기존 소통 방식의 탈피인 것이다. 이런 곳에서 벌어지는 인간 사회는 물리적 사회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우리는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새로운 공간'에서 생활하는 경험을 인류 최초로 해보고 있다. 그런 면에서, 각각의 공간을 다른 공간에 비교하여 그르칠 것이 아니라, 각 사회의 발현된 고유의 모습으로 성장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