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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죽은 그 이후엔
    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 2022. 5. 4. 18:15

    당신의 장례식은 어땠으면 좋겠는가?
    나에게 있어 내 장례식은 사실 의미가 없다. 그 의미를 가질 cherish 할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후세계를 믿는다면야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없다는 가정하에, 내 장례식은 내가 아닌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나의 마지막 선물일 것이다.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가 속한 network에서 하나의 node 가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즉,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connection 을 잃는 것이다.
    나는 내 장례식이 또 하나의 인연(비단 남녀간의 운명적인 만남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알던 사람들은 내 장례식에 와서 내가 알고 있던 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사라진 network 의 구멍을 다시 메꾸고, 내가 있을 때보다 더 촘촘히 짜여진 network 가 되어있을 것이다. network 에 구멍이 남과 동시에 다른 connection 을 강화, 생성 하는 것이다.
    나를 in the flesh 로 더이상 볼 수 없어 슬픈 사람들도 있을테지만, 그럴 수록 나를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서 찾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나를 만들었고, 나도 그들의 일부이었을 테니깐. (으윽 쓰고 보니 너무 오글 거리는 말이네) 사라진 나를 계기 삼아 새로운 사람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나는 무덤따위는 필요없다. 납골당에 넣어두는 것도 필요없다. 죽은 사람이 현세에 사는 사람들 비싼 땅 차지해서 뭣한다고. 매년 시간 맞춰 하는 제사도 나를 위해 하고 싶지 않다. 만약 사후세계가 있다면 열심히 날아다니며 세계여행하느라 바쁠테니깐. 다만,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지정해놓고 싶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그 공간이 특별한 공간인지 알지만, 나를 모른다면 그저 다른 공간과 다를 바 없는 그런 공간과 시간. 그 곳에선 내가 없더라도 나를 알고 있던 사람들끼리 모일 수 있겠지.
    그 공간은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곳으로 하고 싶다. 타의적으로 없어진다면 흐지부지 되고 말테니깐. 시간도 현세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시간대이고 싶다. '나' 를 만나기 위해 굳이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지금 딱 떠오른 곳이 있는데, 다른 곳을 떠올리려니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곳은 바로, 도락산 정상 가까이 있는 선녀탕. 꼭 목욕탕 같이 움푹 들어간 곳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도락산은 내가 어릴 때 가족들과 갔던 산들 중 몇 안되게 깊게 인상이 남은 산이다. 산 올라가는게 되게 어려우면서 다이나믹 해서 재미있다. 어린애도 오를 수 있는 곳이니 걱정하지 말도록.
    시간은, 5월 둘째주 토요일. 학생들의 중간 기말도 안겹치고, 일요일 교회 나가는 사람들도 안겹치고, 꽃도 막 필 시기이다. 게다가, 나는 토요일을 안식일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을 쉬어가는 하루를 토요일로 잡고 싶다. 이의 있는 사람은 나를 잊던가. ㅎ 나름 많이 배려해줬다~
    이 곳에 모여 내가 알던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이야기 나누고, 처음 보는 사람끼리 대화도 가지고, 술먹고 시비 붙으면 싸우기도 했으면 좋겠다. (참고로 산에서 술먹으면 위험해요) 그게 사람 사는 거지. 나땜에 말 조심하고 행동 조심하는 거는 부디 안했으면 좋겠다. 내가 잊고 싶다면, 그 이 공간에 시간 맞춰 안나타나면 되겠지? 다만, 시간 맞춰 나타난 사람들끼리 안 온 사람들 가지고 뭐라 욕하지는 말자. 그들이 선택한 걸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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