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단으로써의 음악나의 글, 나의 노래/감자 글 2024. 8. 6. 19:57
어떤 음악은 시적인 가사가 매력이다. 어떤 음악은 실험적 화성이 매력이다. 어떤 장르는 최소한의 기본틀 위에 흐르는 즉흥연주가 묘미이고, 또 다른 장르는 작곡가의 의도를 최대한 지키려 한다.
음악은 그 장르의 스펙트럼만큼 전달하는 심상이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주제의 톤은 아주 명확하게 전달된다. 모두들 입을모아 단조는 장조보다 어둡다고 말한다. 그 누구도 단조를 듣고 신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음악은 우리가 언어체계로 떠올리는 하나의 생각 조각에 정확하게 대응되지는 않는다. 누구는 쇼팽 발라드 4번 오프닝을 듣고 호숫가 윤슬을 떠올리는 반면 누구는 따스하게 들어오는 햇빛을 상상한다. 떠올리는 결은 비슷하나 그 누구도 같은 것을 떠올리지 않는다. 따라서 오해는 없지만 그 누구도 같은 심상을 경험하지 않는다. 음악은 그런 모호함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선율과 화음이 주는 안정감과 안성맞춤, 분위기의 흐름, 변칙성들이 음악에 재미를 더하고, 음악으로 경계 없이 그려진 수채화 위에 의미가 담긴 가사가 윤곽선을 그려준다. 우리는 사물을 색채의 집합으로 관찰하지만 인식하기론 개별적인 사물로 분리하여 관찰한다. 가사는 음악이 전달하는 바를 더욱 언어적으로 명확히함에 있다.
나는 음악을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써 배우고 싶어했다. 한국의 아이묭이라고 불리는 한로로도 그렇게 음악에 입문했더랬다. 시작의 목적은 예술 밖에 있었지만, 나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녹여내어 널리 퍼뜨리려면 일단 음악적으로도 매력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듣기 좋아야 가사를 펴볼 것이고, 더 많이 들을 것이다. 가사를 찾아보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한 소절도 따라부르지 못하는 '강남스타일'에 외국인들이 열광했던 이유는 단지 '신나서' 였다.
이는 마케팅, 외모지상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아무리 상품이 좋아도 포장이 비위생적이거나 무성의하다고 느껴지면 구매 결정이 쉽지 않다. 우리는 상품의 쓸모를 위해 구매를 하지만, 결국 우리의 구매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브랜딩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마케팅과 패키징이다.
음악은 세계인의 언어라는 말이 뜻하듯 음악이 널리 따라불리는 것은 그 음악이 음악적으로 뛰어날 때이다. 그래서 나의 관심사는 점점 음악 그 자체로 넘어갔다. 더 듣기 좋은 음악은 어떤 것일까. 내가 하고픈 이야기에 걸맞는 분위기는 어떤 음악인가. 그런 분위기는 어떤 음악적 장치로 만들어지는가. 예술은 그 아름다움이 예술성 그 자체에 있을 때 비로소 외부 의미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 가치를 띠게 된다.
하지만 한로로의 음악을 분석해보면 의외로 간단함에 놀란다. 코드 진행도 대단한 기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타 사운드도 의외로 간단하다. 딱 넘치지 않을 정도의 단단한 음악성만 갖추고 있는 느낌이다. 따지고 보면 이정도만 해도 수단으로써의 음악은 성취한 수준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한로로가 락 장르를 선택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락 장르는 특이하다. 곡 구조가 아주 단순하다-음악 비전공자 음알못이 하는 발언입니다-. 반복이 정말 많고, 음악적인 장치보단 사운드로 특색을 살리는 경우가 많다. 사운드라 함은, 일렉 기타의 날카로움(drive), 베이스의 꽉찬 사운드와 음율 실은 리듬, 드럼의 조합 등이다. 이런 것들은 음악적 기반지식이 없이도 체감할 수 있는 재미요소들이라, 대중에게 이해되고 사랑받기에 진입장벽이 낮아 더욱 좋다. 또, 락 장르 특성상 잔잔한 것은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그 메시지에 강렬한 인식을 더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구조가 단순해 생산하는 입장에서도 진입장벽이 낮다.
음악성을 더 욕심내는 순간 이제 나는 음악 그자체로의 음악으로 기운다. 이쯤에서 수단으로써 음악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로로 정도의 음악은 나도 만들 수 있겠다"는 업신여기는 격의 생각이라기 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걸맞는 장르를 이제는 찾고 그 장르로 음악성을 더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다.
최근 락을 비롯한 전반적인 밴드 구성 음악에 신물을 느꼈다. 조금 더 어쿠스틱하고, 클래식한 아날로그 악기가 더 감미롭게 다가왔다. 이상순, 곽진언, 강아솔, 강지원, 김동률.. 잔잔하고 차분한 소리가 좋다. 반복보단 계속 변화하며 흘러가는 선율이 좋다. 또, CASIOPEA 같은 퓨전 재즈로 락밴드사운드에서 궤도를 살짝 바꿔서도 찾아듣고 있다. 그 와중에 페퍼톤스는 안질린다..
이제는 음악을 섭렵하는 것보다,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다듬는 데 신경을 써야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간결하게 전달할 것인가. 그것에 붙일 음악은 어떤 형태일까.
post script.
AI가 의외로 예술 분야에서 썩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이유도 예술이 가진 모호성에 있다고 느낀다. 예술 작품이란게 워낙에 결만 맞으면 '내가 원했던게 딱 그거야!' 를 외칠 수 있을 정도로 안정권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조적인 분야에서 오히려 AI는 잘 할 수 있다. 사람들이 '태양'이라고 부르는 모든 그림들의 중심에 해당하는 값을 찾아내기만 하면, 모두가 그 그림을 보고 태양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글, 나의 노래 > 감자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모하는 취미 (0) 2024.10.13 왜 우리는 목돈이 필요한 시장에 살까 (0) 2024.08.06 공용 쓰레기통 투아웃제도의 결점에 대한 합리적 선택이론적 접근 (0) 2024.06.25 시험예찬 (0) 2024.06.11 우물을 위한 삽질 (1) 2024.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