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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예찬나의 글, 나의 노래/감자 글 2024. 6. 11. 05:19
시험기간만 되면 우린 항상 되뇌인다. "시험 이거, 내가 왜 봐야 하는거지? 공부만 하면 됐지, 시험 공부가 배움에 직결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학습의 본질만 흐리는 거 아냐?"
왜 우리는 시험을 보고, 왜 시험제도는 초딩따리도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점을 가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되지 않는가? 시험기간에 되서야만 치열해지는 이 고민을 담아보았다.1. 시험은 누가 필요해서 만든 제도인가. - 평가의 탄생.
이 지긋지긋한 시험은 왜 끊임없이 있는가. 이거 만든 놈 누구야? 라고 문책한다면, 그것은 바로 교육기관이다. 교육기관은 교육만 하면 됐지, 평가제도는 왜 필요한가? 이는 교육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왜 교육기관에서 지식을 얻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찾으려하면 어디서든 지식을 찾을 수 있는 지식의 홍수 시대에서 왜 우리는 대학에 가고, 왜 학원에 가는가? 교육기관들은 같은 지식을 습득하기 쉽도록 조정, 편집, 수합, 조절해서 가이드해주기 때문이다. 교육기관에는 지식이 잘 정리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손쉽게 배우는 방법과 가이드(instructor) 가 있다. 지식이 음식이라고 하면 교육기관은 음식점이다. 음식점은 우리를 대신해 먹기 좋게 식재료를 재단하여 주고, 그것이 우리가 직접 해먹는 것보다 간편하고 실속있기 때문에 음식점을 찾는다. 마찬가지로, 교육기관이 제공하는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닌 '정제되고 체계화된 지식', 그리고 '편히 습득하는 방법과 도구'이다. 우리는 지식을 좀 더 손쉽게 배우기 위해서 교육기관에 간다.
시험은 교육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품질보증서와 같다. 지식은 무형자산이므로 교육기관은 자신들이 지식을 잘 전달했음을 증명할 수단이 필요하다. 교육기관이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이 학생에게 성공적으로 전달되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육기관은 자신의 학계 권위를 내걸고 자신들이 제공하는 상품에 품질 보증서를 발급하는 것이다.
(현실은 지식을 손쉽게 배우러 간다기보다, 그 품질보증서를 받기 위해 가는 격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2. 문답식 평가는 학업이해도를 잘 판별해내는가 - 평가 집행의 실천적 방안 논의점.
지식이 잘 전달되었는지를 확인할 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가? 지식이 잘 전달되었다는 것은 학생이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증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이 부분들은 충분한 철학적 논의가 필요한 지점들이다.
이런 논의를 간단히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평가방식을 먼저 정하고, 이를 통해서 우리가 전달하려고 하는 바를 정의하면 된다. 자연히 '지식'은 곧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재정의된다. 이렇게 정의하면 지식과 그 평가방법이 명쾌하고 빈틈없이 상호설명하게 된다. 물리학적 비유를 들자면, 1미터를 정의하고 이를 통해 빛의 속도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속도를 정의하고 이를 통해 1미터를 정의하는 격이다. 결정론적인 세상을 관찰하는게 아니라, 관찰함으로써 세상을 결정짓는 격이다. 순환적이고 역행적인 구조에서 오는 논리적 찜찜함을 떨치긴 힘들다만, 적어도 빈틈이 없긴 하다.
그럼 그 평가 방법은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우리가 쓰는 시험제도는 다분히 귀납적이고 표면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곧 (시험 문제가 대표하는) 여러 상황들이 닥쳤을 때 일련의 방식대로 행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황을 제시하고 그것에 지식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짝지어 두게 되면 우리는 지식을 귀납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정확히는, 지식을 가지지 않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다만 이 해법은 지식의 활용적인 측면만을 부각한 해법이다. 다시 말해 지식을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아닌,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지를 외현적으로 확인함으로써 지식을 갖고 있음을 유도해내는 것이다.
이 2번 논점에서 논리적으로 공격할만한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다. 평가방식을 통해 정의한 지식은 지식의 이데아를 잘 표현하는가? 평가방식이 귀납적이고 표면적인 것은 해결할 수 없는가? 지식은 활용되어야만 의미를 가지는가? 지식을 소유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등등 현재 시험제도가 명쾌하게 짚지 않고 넘어가는 논리적 허점이 많다.3. 시험은 공부를 더 하게 만드는가. - 평가의 학업 동기적 의의.
이런 논리적 허점이 많은 방식을 우리는 왜 고수하는가? 이는 학습이 일어나는 방법을 살펴보면 조금 더 설득력있게 들릴 것이다.
심리학계에서는 학습의 방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으로 대표되는 파블로프식 조건형성, '스키너의 상자' 실험으로 대표되는 스키너식 조건형성, 그리고 모방과 모델학습으로 대표되는 관찰학습이 있다. 우리가 흔히 지식을 배우는 것은 관찰학습에 가깝다. 관찰학습이란 직접적인 자극과 보상이 있는 상황에 처하지 않아도 개념적으로 어떤 행동양식 및 사고회로를 습득하는 방법을 말한다. 쉽게 말해 '절벽에 떨어지면 죽는다'는 사실을 직접 떨어져보지 않고도 개념적으로 학습하는 것이다. 인류의 많은 지식은 역사에 걸쳐 고도화 및 체계화되어 있어, 비록 세계의 원리에서 비롯했다 하더라도 그 구조는 실제 두 눈으로 그 세계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는 경험적/실험적으로 되짚어가며 배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언어로 잘 정리된 개념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비록 관찰학습을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를 스키너식 조건형성의 방식으로 습득하고 있다. 스키너식 조건형성은 나의 행동에 환경이 어떤 반응을 주는지 연결(연합)함으로써 그 상관관계를 습득하는 학습 방법을 말한다. 이 때 환경이 자신에게 주는 직간접적인 보상과 처벌을 통해 환경이 나에게 원하는 방향을 유추한다. 실상 시험을 잘 못본다고 직접적으로 오는 피해는 없겠지만, 사회문화적 기대 측면에서 잘 보는 것보다 손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시험은 우리에게 이런 가상의 보상회로를 간접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학습을 완수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시험이라는 환경이 우리를 학습하는 행동을 취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지식을 학습해야함을 스키너식으로 학습한 것이다. 시험의 이런 동기적 의의 때문에 우리는 공부를 하도록 만든다. 이 또한 교육기관이 자신의 커리큘럼을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부수효과라고 할 수 있다.4. 성적은 과연 그 사람의 학업이해도를 반영하는가. - 평가 결과의 의미.
교육기관은 우리가 공부한 만큼 보상을 느끼도록 점수라는 차등보상제를 도입한다. 차등보상제는 더 큰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를 제공하고, 따라서 우리가 학습해야 할 방향을 가리킨다. 지식학습은 더욱 촘촘하면 촘촘할 수록 좋다는 의미를 학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차등보상제 또한 논리적 문제가 많다. 과연 전체 상황 중 한 두 상황을 올바르게 풀어내지 못하는 것이 그 비율/가중치 만큼의 학습을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애초에, 지식 학습이 부분적으로만 실패했다는 것이 가능한가? 시험제도는 지식학습을 확인하기 위한 하한선을 긋는 것이라 봐야 한다. 시험에서 지식학습이 완전히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경우는 오직 만점을 받았을 때이며, 반대로 만점이 아닌 때에는 지식학습이 완전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귀납적인 평가방식 특성상 반례가 하나라도 관측되는 순간 지지하려는 논리를 뒷받침하기는 커녕 반박하는 예시가 된다.
이쯤에서 우리가 공부를 했음에도 만점을 받지 못하는 여러 이유에 대해 살펴보자. 시험이 이런 부분만 예외처리해 용인해준다면 시험제도는 더욱 완벽해질 것이다. 시험제도의 구체적 구현방안(예, 시험지)에서 오는 허점들을 찾아보자.
첫째로, 시간이 부족해서 적절한 답을 못쓰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언젠가는 채점을 해야하는 시험 특성상 무기한으로 시험을 치룰 수는 없지만, 원하는 만큼 시간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 길이는 교수님의 아량과 학생의 심리적 이기심 간의 타협점이어야 하나, 보통 교수님이 일방적으로 정하긴 한다. 또, 지식 특성상 속도가 빠를수록 좋은 지식의 분야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원하는 만큼 시간을 주되 소모한 시간만큼을 차등보상제에 반영하는 식이 맞을 것이다.
둘째는 '마킹실수'로 대변되는 소견 불완전 전달이 있겠다. 매체의 특성과 상황의 심리적 압박감 상 우리는 지식적 구멍이 아닌 전달 실수를 범할 수 있다. 하지만 전달된 정보만으로는 전달 실수를 지식적 구멍과 구별해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 경우 문제 간에 중복되게 같은 개념을 다른 방식으로 물음으로써 이를 찾아낼 수 있도록 시험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병역검사에서 "나는 메뚜기 100종류 이상을 알고 있다" 라는 문항이 '질문을 의도적으로 불성실하게 답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장치로 사용되듯이 말이다.
셋째는 시험문제가 배운 지식을 선택적으로만 묻지 않고, 세부적인 모든 내용까지 빠짐없이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배운 지식들 중 일부를 표본추출하여 그 지식들을 알고 있는지 확인함으로써 전체 배운 지식의 학업이해도를 유추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마저도 귀납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지식들이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든 지식에 대해 문제를 출제하거나, 모든 지식에 결부되어 있는 중심격의 지식만을 물어봐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이미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내고, 그렇게 이 과목의 중심을 전달하고 있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뻗치긴 한다만.
시험제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평가제도의 이데아에 한참 못미치는 수행방식일 수 있다. 객관식, 주관식, 논술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구멍을 메꿔보려고 하고 있으나 큰 틀로써 문답형 평가방식은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귀납적이지 않으면서 현실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평가방식이 더 없을까.5. 문제풀이는 과연 공부에 본질을 흐리는가 - 평가 방식이 학습에 미치는 역행적 영향.
마지막으로 논의해보고 싶은 주제는 바로 '시험공부는 과연 공부인가' 이다. 시험점수로 그간 학습기간 동안의 과정을 환산 받게 되는 현 제도에서 우리는 솔직히 시험을 잘보기 위한 훈련을 한다. 문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지식을 인출하고 응용하는 것은 지식을 배우는 과정과는 다른 종류의 숙련도를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잘보기 위한 훈련은 두어도 괜찮은가?
나의 의견은 '오히려 효과적이다'이다. 인출하는 연습을 통해 인출 단서를 만드는 과정도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지식을 배우고 외워도 까먹고 산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뇌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 꺼내는 기억들은 계속 생각나듯이, 계속 꺼내는 연습을 하면서 지식이 물고 점화되어 나오는 물꼬를 만들어놓는 것이 기억 인출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 면에서 문제풀이는 갖가지 문제 상황을 포착하며 그에 가깝게 인출 단서를 연합해 놓는 작업을 하게 한다.6. 맺으며
시험제도는 우리를 공부하게 하며, 공부는 시험에 의해 구체화된다. 지식은 시험을 통해 훈련되고 습득된다.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지식이 이후에도 자주 끄집어내질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시험 점수는 우리의 학업성취도를 나타낸다기보다, 학업적 동기로서의 의미만 갖고있다고 봐야한다는 점이다. 시험 점수에 일희일비하지 말되 그렇다고 너무 느슨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시험제도의 긍정적 의의를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
시험제도를 비판하려고 쓰기 시작한 글이 스스로 납득시키는 글이 되었습니다.
작가의 말2.
이번 시험기간은 유난히 긴장이 되지 않습니다.
익숙해진 걸까요, 달관한 걸까요.
시험을 거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나의 글, 나의 노래 > 감자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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