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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지 말고 생각을 글로 써라나의 글, 나의 노래/감자 글 2024. 3. 4. 10:39
최근 올렸던 한 글을 내렸다. 쓰고 하루 이틀 지나 다시 읽어보니 내가 쓰기위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이러면 안되는데.
나의 글은 딱 내가 싫어하는 류의 교훈 에세이집에 수록되어있을 것 같은 글이었다. 세상을 걸으며 얻은 얕디 얕은 지혜를 깊은 곳에서 꺼내온 보석마냥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나도 같잖아보였다. '자, 이것이 바로 내가 너희에게 주는 선물같은 지혜다!' 하는 미사여구적 드라마틱함을 설계했다는 것이 스스로 부끄럽다.
어벤저스 영화 중 아이언맨이 공중모함의 날개를 고치는 장면이 있다. 충격으로 찌그러져 돌아가지 않는 팬형 날개를 그 사이에 들어가 밀어서 재시동을 건다. 어느 시점부턴 시동이 걸린 날개 속도를 못 따라가게 된다. 스타크는 밀던 날개에 손이 닿지 않고 뒤따라오는 날개에 받힌다.
문제는 이것이다. 글을 잡으면서 생각을 한다는 것. 키보드에 손 올려놓고 생각을 하다보면 써지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지금도 비슷한 글쓰기이긴 한데, 이는 경계해야 한다. 글이란게 참 위험한 것이 첫 단어를 고르는 순간 그 문장이 펼쳐질 길이 얼추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첫 문장이 한 문단의 내용을 만들고, 그 문단들이 결국 글을 결정짓는다. 첫 단어에 무엇을 쓸 지 정하는 순간 그 글은 방향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비록 글이 나의 생각에 박차를 가하긴 하지만 글을 잡아야만 깊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글을 잡기 전 글로 남길 내용을 미리 생각한 후 글을 쓰려고 한다. 그래야 사고의 폐활량이 늘 것이다.
나의 글은 나를 담는 거울이지 나 그 자체가 아니다. 글을 점토라 생각하지 말라. 글은 단지 조각칼일 뿐이다. 나를 글로 채우려하지 말고 나를 다듬을 목적으로 사용하라.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지 말고 생각을 글로 써라.
요즘 1일 1에세이를 재가동하느라 시간에 쫓겨 글을 쓴다. 가뜩이나 자기 직전 글을 쓰니 다른 급한 일에 밀리기 쉽상이다. 하루를 털어놓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게 마음이 편했었지만 꾸준히 글을 쓰려는 면에서 좋지 못한 시간대인 것 같다. 그래서 이 글 부터는 아침에 쓰려고 한다.
(3/5 추가 작성)
젊은 시인이 한편의 시를 내밀며 물었다. '이 시를 쓰긴 썼는데, 제가 뭘 쓰려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무슨 뜻일까요?'
글을 써놓고 생각하는 것은 무의식의 재발견인가? 생각 확장의 순간인가?
작가의 말
다음엔 통제하지 못하는 힘, 그리고 이우드의 러다이트 운동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나의 글, 나의 노래 > 감자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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