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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시티나의 글, 나의 노래/감자 글 2024. 1. 15. 01:31
몸담는 집단에 따라 사람은 변화한다. 집단이 만들어진 목적에 따라 행동양식에 제한과 자유가 정의된다. 그것 위에서 우리는 하루하루의 시간을 사용한다. 뜨거운 불판 위에 냉면을 서빙할 수 없는 법이고, 미어터지는 지하철 안에서 앉을 수 없는 법이다. 집단 속 개인의 삶은 그 집단이 각각의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이념과 이를 세칙화한 규정에 의해 세공되어 모두 비스무리한 결을 갖게 된다.
나는 지난 2023년동안 '우리는 왜 살아남아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한편으로 재밌는 것들이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싫지만은 않으나, 우리가 뜻없이 세상에 태어나 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살아가는지 그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걸어가야 하며 무엇을 하며 '삶의 보람참'을 느껴야 하는가?
우리의 집단은 우리가 객관화한 개념들로 성형된다. '평등'이란 개념을 생각해내고, '자유'란 개념을 생각해내며 우리는 이 가치들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감정의 영역에서 이성적인 성찰을 통해 개념을 캐내어 정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이성적인 판단과 사유를 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생각은 개념 위의 사유로 구체화되는만큼 한 개념의 탄생은 집단의 모습에 만만찮은 영향을 미친다.
일례를 들어보자. '인간 존엄성' 이라는 것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지배층은 혈통으로 이어진 존재들이고, 평민들은 그들의 치하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평민은 지배층이 될 수 없고, 지배층은 평민이 되지 않으므로, 평민들은 스스로 지배층과 비교하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혁명의 역사를 겪으며 '누구든 지배권력은 쟁취하는 자의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평민도 '도전해볼 수 있는, 넘볼 수 있는' 자리가 된 것이다. 그에 따라, 평민과 기득권을 제외한 지배층은 인간이라는 공통된 집단으로 묶일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게 되고, 그 지점에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라는 큰 뜻을 담은 '인간 존엄성'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인간존엄성은 종교개혁이 그 시초였다는 주장도 있다. 성서를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함으로써 모두가 '지배층의 지배 정당성'이라곤 하나도 적혀있지 않은 신의 말씀을 듣게 된다. 종교도 결국 사람이 역사에 걸쳐 구축한 것이므로, 인간존엄성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종교에 의해 해석되어 나온 것이다.우리는 필요에 의해 집단을 이루고 살고, 집단의 유지를 위해 '선'이라는 것을 만들며 살아간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꾸준히 골몰해가며 판단한 것들을 이후에도 일관되게 적용한다. 그 집단이 '선'이라고 판단하는 행동거지들이 곧 그 집단의 공유된 사상이고 삶의 방향성 이정표가 된다.
과연 어느 집단이던 '선'으로 인식되는 이른바 '절대적 선'이 존재할까? 각 집단이 모이는 목적은 천차만별이므로 제쳐두고, '모인다'는 행위에서 오는 '선'이 있는지 살펴보자. '살인하지 말자' 가 가장 대표적인 '절대적 선'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존재들이고, 더욱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 위해 뭉치는 것이므로, '서로를 파괴하지 말자'는 모이기 위한 안전장치와 같은 합의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도 또 하나의 '절대적 선'이다. 우리는 '같은 뜻을 공유하는 자'들이 모인 집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이기 이전에 개인이었고, 각각의 개인은 모이기 전에는 그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뭐, 능력 차원의 힘의 차이를 제외하면 말이다. 개인의 capabilities 로 우리는 서로에게 차등적인 '집단 내 초기 권력'을 쥐어주게 되지만, 그에도 어느 한계가 있어야 한다. 모두가 동의해서 결성한 집단이 내부적으로 정의한 힘들이 부딪혀 집단이 와해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 집단의 생명유지를 위한 첫단추이다.
같은 집단 속에 소집단을 형성하는 경우라면 어떨까? 학교에서 학년을 나누고 학급을 나누듯이 말이다. 지구에서 국가를 형성하고 살듯이 말이다. 이런 경우 소집단 속 개인의 힘과 입김세기는 모집단의 그것으로부터 독립적이어질 수 있다. 군대에서 사회적 위치가 묵살되듯이 말이다. 야자게임을 하며 선후배 관계가 뒤집어지듯이 말이다. 소집단을 구성함으로서 힘의 차등은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재설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모집단에서 얻지 못하는 가치들을 모집단에서 탈출하지 않고도 이룰 수 있다.
소집단을 구성함으로 새로운 사회체계를 꾀할 수 있는 이 '소집단 울타리 치기'를 나는 흔히 성벽이라 비유한다. 성주의 절대적 영향권의 경계가 물리적으로 그려진 것이 성벽이다. 성벽을 기준으로 사회의 체제는 서로 침범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나라를 물리적으로 탈출하지 않아도 나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나의 글, 나의 노래 > 감자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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