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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나의 글, 나의 노래/감자 글 2024. 1. 22. 11:15

    Q1.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A. 저는 자신 일을 열정있게 하는 사람이 멋있는 것 같아요.
     
    Q2. 이상형을 어떻게 찾고 계세요?
    A. 저는 그냥 제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요. 그렇다보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까요?


    Q1.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B. 아, 저는 다정한 사람이 좋아요, 그것도 저한테만 다정한 사람이요 ㅎㅎ
     
    Q2. 이상형을 어떻게 찾고 계세요?
    B. ... 주변 아는 사람들 중 다정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 같아요. 제 주변 사람들의 의도를 잘 곱씹어 보는 스타일이에요.


    C. 보통 돈 많은 집안 사람이 꼬임도 없고 정이 많더라구요..
    C.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아무렇지 않게 과자 내미는 사람?ㅎㅎ 딱히 비싼 거 아니더라도 선뜻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좋아요.
     
    D. 저는 거짓말만 안하면 돼요. 저에게 진실되게 대하는 모습이 보이면 좋아요.
    D. 저도 모르게 사람들을 시험하게 되요. 애매한 상황들에서 거짓말을 하는지 지켜보게 돼요.
     
    E. 저는 몸 좋은 사람이요.. ㅎㅎㅎ 
    E. ㅎㅎ 그냥 첫인상으로 바로 반하는 스타일이에요.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세상의 소화물이다. 순간순간 주체적인 선택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 그것마저도 자신이 살아오며 쌓아온 가치관, 즉 과거 경험에 종속된 행위이다. 자신이 오고가며 경험한 모든 순간들이 과거 판례가 되고, 모든 정보들이 증거물이 된다. 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판례들이 생길 때마다 자신의 판결 경향성이 뚜렷해지고, 뚜렷해진 것을 깨닫는 순간 굳어버린다. 
     
    아직 경험이 적을 어린 나이에는 이전의 판례로도 판결내리기 힘든 상황들이 많다. 보통 그럴 때는 선각자들의 판단에 기대어 판단실패 가능성을 줄이려 노력한다. 예컨대 "서로를 사랑하라"하셨으니 더욱 다정하게 대하려 한다던지. "미운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준다"던지. 엄마 말 듣고 하기 싫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간다던지.
     
    우리의 모든 판단은 '세상이 말하길 그렇게 살아야 좋대'의 여러 유사복사본들이다. 메타몽 같은 것이지. 금형으로 찍어낸 쇠종 같은 것이지. 결국 우리의 모습을 나답게 하는 것은 메타몽이 복제하는 그 대상 포켓몬, 곧 우리가 우러러 보기로 "고른" 선각자들이다. 한편으로 이 "고르"는 판단 근거도 이미 과거 가치관에 종속된 것 같다만.
     
    상호작용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우리로서 이런 메타몽같은 습성은 태생적인 것이다. 본 것을 기억하고, 욱신거리는 부위를 꾹 눌러 지혈하고, 들은 대로 사람의 의도를 해석한다. 의도의 표현, 전달 그리고 해석의 과정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세상에서, 그리고 우리가 태어나며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결국 창조적 편집자에 불과하다.
     
    '선각자의 메타몽' 방식으로 새로운 판례를 판단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안전한 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방법은 옳은 방법이긴 한가? 우리는 왜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건가?
     
    미래를 보지 못하는 우리는 대신 예측의 시각을 가졌다. 미래를 훤히 볼 수 있었다면 어설픈 예측 따위 하지 않겠지. 세상이 결정론적으로 흘러갈 방향을 과거 정보를 통해 미리보려 노력한다.예측은 왜 하려 드는가? 원하는 미래를 가져오는 원인을 의도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지. 하지만 확률이 왜 확신이 아닌 가능성을 뜻하는가? 인과관계 또한 관찰의 결과이기 때문이지. '아, 이 일이 일어나면 그 다음에 이 일이 일어나는구나' 라는 시간적 연속됨을 보고 하나가 다음을 부른다고 인식한다. 우리의 최대확률 상황이 벗어나는 경우는 과거의 정보가 우리가 예상한 미래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잘못 생각했군.' 혹은 '내가 통제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군' 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최근에는 이 세상에 던져짐에 크게 토라져 축 늘어져만 있었다. 독방에 갇힌 죄수처럼 아무것도 없는 단칸방에서 뭐라도 해야하는지 빙빙 제자리 돌기만 했다. 미칠듯이 새하얀 벽에 낙서를 해보기도 하고. 나를 잡아먹을 듯한 지루함과 의미없음이 나의 엉덩이를 걷어차올렸다.



    이 이전에 어떻게 생존해야할까 의 고민도 많이 한다. 쓸모가 있어야만 살아남는 세상에 침뱉기도 했지만, 결국 어떻게든 걸음을 멈추면 안되는 러닝머신 같은 이 세상에서 걸음마를 터득하려 노력했다.

    이십대는 세상이 얼마나 넓고 부조리한지 깨닫는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남루한지 깨닫는 시간이다. 운전대를 처음 잡아본 그 순간처럼, 하다보면 잘하게 되겠지 하며 한줌의 용기를 끌러모은다.  그래, 용기가 있어서 행동하는게 아니라, 행동하면 용기가 생기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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