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갈아탈 거인의 어깨 - 습득한 사고관에 대하여
    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를 써보자 2024. 5. 9. 03:10

    나의 첫 학문 관심사로서 물리학을 공부한 것이 참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어릴적 공부한 물리학은 나에게 상상력의 힘을 알려주었다. 
     
    물리학을 공부하다보면 지평이 넓어지는 기분이 드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물리학이 역사를 지나오며 끊임없이 확장되고 교체되면서 수정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들은 이따금씩 생각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마치 빽빽한 숲 사이를 헤치고 오르다가 갑자기 만난 탁트인 전망대에서 느껴지는 개방감 같은 것이 쓰나미처럼 덮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바람이 불며 고래 소리가 나는 트랜지션 같은 해소의 시원함이 느껴진다. 나를 사면으로 둘러싸고 있던 컨테이너 벽이 일제히 뒤로 넘어가며 느껴지는 공간 확장의 쾌감이 물리학을 더욱 오래토록 사랑하게 만들었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 보이지 않던 반대편 독일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나에게 그 (시간순으로) 첫번째 순간은 아마 뉴턴의 법칙이 운동량 보존법칙에서 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이고, 두번째 순간은 라그랑지안을 배웠을 때였다. 뉴턴이 갑자기 사과를 맞아가지고 요상한 개념을 뙇 발명해낸 줄 알았는데, 이 또한 관찰을 기반한 스토리텔링의 일부였음을 깨달았을 때 적잖이 놀랐다. 라그랑지안을 통해 물체의 속도와 힘을 고민하지 않고도 움직일 궤적을 알아낼 수 있는 것 또한 크게 충격적이었다. 
     
    이런 면에서 물리학은 나에게 '지식이 곧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만든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물리학은 질문을 통해 탄생하고 발전해가는 학문이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원자의 내부 구조를 차근히 밝혀내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깨지지 않는 딱딱한 공같다고 생각했던 원자가 '건포도가 박힌 파이', '궤도' '태양계', 모델을 지나 결국 '전자 구름 속의 원자핵' 모델이 되기까지 원자는 우리 머릿속에서 그 모습이 끊임없이 수정되었다. 

     
     
    물리학을 이끌어나가는 연속적인 질문들은 또 상상력으로 해결되는 순간이 많다.
     
    '서로 밀치는 두 물체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 힘의 발명
    '왜 우리는 밝은 곳에서만 볼 수 있을까?' - 빛의 개념화
    '왜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인 것이 가능할까?' - 미립자의 이중성 
     
    물리학적으로 깊이 들어갈 수록 이렇게 새로운 개념을 상상해 도입함으로써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해내는 지점들이 많다.이렇듯 나는 물리학을 통해 '조그만 사상적 상상력으로 세상을 보는 시야를 단숨에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을 주목하고 논제화하여 명철하게 분석하는 습관이 그래서 생겼다. 그리고 그것을 풀 때에 '이런것 아닐까?' 하고 골똘히 짜맞춰지는 퍼즐을 상상하려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물리학을 통해서 성찰과 용기, 끈기와 겸손을 배웠다.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넘어간 논리적 비약점을 찾아내는 성찰.
    고수하던 방식의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시각을 과감히 받아들이는 용기.
    무엇이 문제를 만드는지 자신의 논리를 끊임없이 검토하는 끈기.
    오류가 발견되면 이를 해결해 줄 새로운 미디엄을 생각해내는 상상력. 
    그리고, 내가 무조건 맞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앎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설명에 귀기울일 수 있는 겸손함.
    자신의 논리가 맞음을 증명하기 위한 빈틈없는 체계화 노력.
     
    물리학은 나에게 지식을 탐구하는 자세를 가르쳐주었다.

     


    이렇듯 나의 현재 이러한 성찰하는 본성과 창작하길 좋아하는 성향은 물리학을 빼놓고선 말하지 못한다. 지금의 나는 물리학을 공부했던 지난 5년간의 여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제는 물리학과 소원해졌지만, 나의 영감과 비유는 물리학적 레퍼런스가 많다. 나와 완전히 전공분야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보면 그 차이를 크게 느낀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빈번히 삼국지의 전략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연애를 드리블과 슛으로 표현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적 레퍼런스가 곧 선현들이 학술적 돌파구를 만들어낸 예시들이다. 우리는 비슷한 상황에 놓일 때 '지식적으로 배운' 선현들의 방식과 유사함을 느끼고 그것을 답습해 상황을 전개해나간다. 수학 문제집 열권 풀면 어떤 문제던 비슷한 문제를 풀었던 기분이 들듯이 말이다. 인강을 열심히 들으면 '이런 문제는 강사님이 이렇게 먼저 접근하시던데' 같은 것이 떠오르듯이 말이다. 
     

    길은 앞서 걸어간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상황을 풀어나가는 방법들은 곧 지식적으로 배울 수 있는 부분이다. 지혜는 직접적으로 배울 수 없지만, 그것의 기반이 된 상식과 지혜의 적용예시들은 지식적으로 배울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고 생각하는 것은 다 비슷비슷하니, 먼저 살다간 사람들이 어떻게 살다 갔는지 혹은 현재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주의깊게 보는 것 만으로도 사고의 유연성을 기를 수 있다. 
     
    나의 현재 목표는 철학 전반, 문학 전반의 레퍼런스를 쌓는 것이다. 생각의 정리와 전개를 하는 방식과 속도에 부침을 느꼈다. 그리고 어떠한 유의미한 사고의 결과물을 이룩했을 때에도 이를 타인이 이해하기 쉽게 재구성 해내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철학적 사고법과 주제들을 배우고, 효과적 스토리텔링 기법을 배우는 것이 내가 지금 얻어야 할 것들이다. 
     

    작가의 말
    줄곧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물리학이 없이 자라난 나는 상상할 수가 없다고.
    물리학을 이을 새로운 지식 꿀단지를 장만하고 싶다고.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