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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것은 하대하는 것이다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를 써보자 2024. 10. 13. 04:08
우리가 아이의 실수에 화내지 않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이유는 아이는 당연히 성숙하지 않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부사수의 실수를 다독여줄 수 있는 이유는 주어준 일을 성공하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용은 상대방의 불완전함을 전제했을 때 가능한 태도이다.
나는 아리따운 아가씨들에게 무뚝뚝하다. 눈을 마주치면 본능을 주체하지 못할 내 자신을 두려워하기에, 실례를 범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관계 형성에 소극적이게 된다. 반대로, 끌리는 아가씨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은 그 아가씨를 얕잡아보는 것이다. 도전하면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쉬운 대상이라 보는 것이다. 대상화하는 비유가 적절치 못하나, 이는 마치 손에 닿을 듯한 높이의 포도를 향해 손을 열심히 뻗어보는 것과 같다. 내 수준에 맞는 대상이라 보는 것이다. 끌리는 대상들은 내가 얕잡아 보는 것이고, 나의 매력에 비해 너무 아리따운 여성들은 신포도 취급하고 있는 매우 이기적인 나이다.
내가 글을 친절히 쓰는 것은 더 많은 독자들에게 쉬이 읽혔으면 좋겠다는 욕심에서 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글은 발행이 더디다. 하나부터 열까지 짚어줘야만 알아듣는 나는 논리 흐름에 빈틈없는 글을 좋아한다. 독자들 또한 으레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전조작기 발달 단계 아이들이 할 법한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생각이다.
논제가 섬세해지고 필자가 성장할수록 그에 걸맞는 독자 또한 바뀐다. 생각을 쏟아내느라 바쁜 필자들은 기존 독자들까지 덩달아 성숙해지길 바랄 겨를이 없다. 독자는 자신의 수준에 비해 친절한 글과 도약이 큰 글들을 찾아 읽어나가며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 때론 글쟁이들만큼이나 책벌레들도 고독하다.
글쟁이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은 독자를 납득시키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해의 소지가 없는 선에서 독자가 벗어나지만 않도록 적확한 글쓰기를 추구하기만 하면 된다. 적확하게 적기만 하면 살을 붙여 이해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를 돕기보단 더 날카로운 생각들을 쉼없이 쏟아내는데 집중하자.
한편으로는 필자도 훗날 독자가 되기에, 최소한의 독자 가이드라인은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든다.'나의 글, 나의 노래 > 에세이를 써보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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