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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견디는 기쁨?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를 써보자 2024. 12. 13. 04:06
오늘은 정말 기분 좋은 하루였다. 꼬박 날밤을 새고 피곤할만도 한데 기분은 좋았다. 간만에 1승을 거둔 동네 야구단의 기분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내 스스로를 다그쳐 해야할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오늘 오전에 있을 회의에 들고가야 하는 서류들을 완성하는 데에 장장 일주일이 걸렸지만, 그것도 모자라 어제 밤을 지새워서야 간신히 기한맞춰 들고 갈 수 있었지만, 아무렴 좋았다. 살이 차올라 넘치듯 흐르는 뱃살을 우겨넣고 안간힘을 써 버클을 채워낸 청바지의 뿌듯함이었다. 그리 별것도 아닌 일인데 왜 나는 마치고 기뻤을까. 일이 끝났다기 보다, 내가 해냈다는 자기인정감이 더 컸다. 나는 왜 서류를 해내고 싶었을까.
나의 태만을 오랜만에 이겨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근래의 나는 절룩거리듯 학교를 다녔다. 되지도 않는 짧은 영어로 더듬더듬 가르치는 교수님의 강의는 하루 걸러 한번씩만 가고, 유창한 한국말로 가르치는 교양과목들만 들었다. 수업과 함께 자연히 멀어져간 전공은 뒤쳐지는 나의 마음은 모르는지 과제만 내 머리위로 쏟아올렸다. 고등학교 때도 경험해봤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 않는 수업 진도와의 간극. 추스려보려고 해도 어느순간부턴 하기 싫어졌다. 그런 만성적인 태만을 정말 간만에 극복한 하루였다. 아직 딛고 일어날 수 있음에 희망을 본 것 같다.
건조한 계절만 되면 꽃피듯 올라오는 주부습진은 이제 만성적으로 올라온다. 습진이 세력을 넓혀 팔오금에도 나길래 초기진압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아왔다. 내복약도 철저히 챙겨먹고 연고도 주기맞춰 바르니 금방 사라졌지만, 내년 이맘때도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또 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평화로이 살던 중세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이후론 많은 시간 백일몽을 꿨다. 나만의 마을. 그 누구도 바삐 살지 않는. 하고 싶은 것들에 힘주고, 하기 싫은 것들은 최대한 천천히 해나가는 전형적인 독일사회를 그렸다. 힘들면 쉬었다 가고, 삶의 소소한 재미거리도 잊지않고 챙기는 삶. 저녁먹기 전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을 다니고, 매일저녁 가족들과의 식사 후 아들과 보드게임 두는 삶. 각자 방에 들어가 읽고 싶은 책 두어권 베고 창문 밖 풍동 흔들리는 소리에 잠을 청하는 주말. 그런 삶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잠시나마 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열심히 하는 것에 소질이 없다고 스스로를 비관하던 요근래 2-3년이었다. 열심히 하기는 금방 지치고 그러니, 내가 그나마 덜 지치는 분야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나의 선호를 탐험했다. 찾아 나서고 보니 세상엔 꽤나 많은 재미들이 있다는 것을 느낀 한편, 그 어느것도 열심히 하지 않고서 충분한 돈을 벌어다주진 않는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아마도 나를 그리 가만두지 않는 것은 이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절대 늙지 않을거야, 피터팬. 매일 밤 놀기만 하고 살고 싶은걸.
재밌는 것을 아무리 많이 찾아도 그것들이 나의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찾아온 것들은 어찌되었던 소비스러운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돈 생각 안하고 열중하다보면 결국엔 끝이 찾아오는 비생산적인 일들이었다. 사진, 커피, 음악감상, 철학, 최근엔 와인까지. 그래서 글이라도 써야겠단 생각을 했었다. 벼심을 땅 한 마지기도 없으니 뭐라도 일궈내려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생산적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오래 못갔지, 학교생활이 열심히 그렇지 못하도록 훼방을 놨으니.
내 많은 도전의 종잣돈이라도 만들어 줄 알바자리도 그만두었다. 주말을 앗아가니 여유도 없어지고, 그에비해 월급은 쥐꼬리만도 못한 마당에 하고 싶었던 커피추출도 시켜주지 않으니, 내 삶의 시동을 걸진 못할 망정 질질 내끌고 있다는 생각에 3개월 만기로 일하고 귀향을 핑계로 그만두었다. 빨리 졸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업만 끝나면 좀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내 삶은 일과 같았고 쉬는 날만 바라고 있었다.
삶을 바라보는 구도를 바꾸고 싶어졌다. 끊임없이 돈을 벌어야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곧 직장이 필수적이라는 말이고, 그 직장은 마음속에 고울리 없다. 돈이 없어도 밥 걱정을 안해도 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하며 비참할까. 많은 인텔리들이 간단히 공산주의를 좋아하게 되는 건 아마도 그들의 향유가치를 저지하는 생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더 너그러워지고, 더 풍족한 땅에서 살며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삶을 살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더 넓은 사람이 되길 노력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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