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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쏠비치에도 부자는 없다
    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를 써보자 2023. 10. 13. 02:14

    우연한 기회로 진도 솔비치를 가볼 일이 있었다. 사실 행사가 재밌어 보여서 신청한 것인데, 장소가 그렇게 으리으리한 곳인 줄 몰랐다. 가보니 다들 행사 참여는 뒷전이고 호텔에서 열심히 놀 생각에 신청한 것이었음을 알았을 땐 혓뿌리에서 씁쓸한 담즙이 느껴졌다. 
     
    처음 가본 그런 으리으리한 호텔은 내게 다양한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한마디로 그 공간에 압도당했다. 아주 호화스럽고 깔끔하게 설계된 내부, 시원시원하게 높은 층고, 여기저기 거울처럼 매끈한 인테리어 장식들. 건물은 간접 조명으로 은은하게 자태를 나타내었고, 자세히 보면 어설픈 고딕 양식은 불편함을 돋구웠다. 부페의 깔끔한 커틀러리, 고상한 메뉴는 그 자체로 신기하지만 어색함을 주었다. 

    그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불편함을 느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 이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없는 느낌. 이 모든 꾸며진 가치들이 무의미한 부자놀이 같은 공허함. 내가 그 공간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헷갈려하는 자신을 깨달았다. 
     
    사진쟁이인 나는 행사가 끝나자마자 카메라를 꺼내 들고 이 공간을 담으려 돌아다녔다. 이 공간이 내게 어떤 인상을 주는지 더 관찰하고 싶었다. 이 공간이 뽐내려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어떤 가치를 비싼 돈주고 지불하고 이 곳에 왔는지 궁금했다. 
     
    내가 본 솔비치 속의 사람들은 이러했다. 첫째, 이런 으리으리함이 모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곳저곳 둘러봐도 처음 보는 멋진 모습에 카메라질을 참을 수 없어 보였다. 그와중에 둘째, 자신이 들떴음을 억누르고 점잖은 척을 다들 했다. 아이들은 시원시원한 넓은 공간에 신나 뛰노는데, 부모님들은 최대한 점잖은 척 아이들을 다그쳤다. 사진 찍을 때도 그윽한 포즈를 취하고, 식사를 할 때도 조용히 손목을 슬쩍 띄우고 우아하게 칼질을 했다. 모든 행동을 천천히 그리고 여유넘치게 하려 했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리라, 라는 욕망이 눈에 그득그득했다. 조식은 세접시씩 받아 먹었고, 안먹어본 메뉴가 있으면 섭섭한 것인지 부지런히 접시를 날랐다. 평소엔 학식 아침밥도 안챙겨먹는 양반들이 샐러드에 크루와상, 과일에 디저트까지.
     
    최대한 점잖게 욕망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 마치 경보 경기를 보는듯했다. 점심시간 종 치자마자 식당으로 뛰어가다 선생님께 혼나서, 팔은 젓지않고 최대한 빠른걸음으로 열심히 다리를 내젓는 철없는 학생들 같았다. 표정은 아닌듯 하면서 욕망은 참지못하는 모습이 더욱 모양새 빠져보여 안타까웠다. 
     
    솔비치에도 브루주아는 없다. 이 곳에 올 수 있는 지불 능력만 된다면 모두 모이는 곳이다. 그 장벽을 통과해 이곳에 온 모두는 책상에 놓인 금화들을 열심히 쓸어담는 욕심쟁이로 변모했다. "뽕뽑으려는" 모습과 동시에 "이런 으리으리함이 익숙한 척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 충돌하는 게 안타깝고 우스꽝스러웠다. 얼굴 반쪽은 웃고 다른 반쪽은 울상 짓는 그런 기괴함을 보였다. 


    나는 그 뽕뽑으려는 모습이 너무 싫다. 모양새 빠져보인달까. 해외여행을 가서도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잘 알지도 못하는 유명 관광지만 열심히 돌아다니는 한국형 패키지 여행을 그래서 싫어한다. 이기심에 대놓고 굴복한 모습이 징그러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왜 그런 모습을 싫어할까. 나야말로 그런 헛된 고상함에 취해 그렇지 못한 서민층의 모습을 내 모습이 아니라고 허세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실상은 천원 한푼 벌지 못하는 빈털터리 대학생인데. 세상을 보는 눈만 높아져있는 고까운 단벌신사가 아닐까. 
     
    최근들어 반성을 많이 한다. 허세로 점철된 빈껍데기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자주 든다.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배운건 사실 많지도 않은데 많다고 콧대 세우고, 자신의 standard 를 터무니없이 높게 잡으며 그 수준의 여가활동을 누리며 스스로 그 집단에 속한다고 끊임없이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사진, 커피, 글쓰기, 명상, 수영, 프리다이빙.. 모두 삶에 여유가 있어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취미들이다. 다시말해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취미라는 것이다. 
     
    사실 진짜 재밌어서 하고 있었던 것들인데, 그것들이 재밌다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된 이유는 결국 엘리트주의적 욕망에 부응했기 때문이라서가 아니었을까. 세상 모든 취미들을 이 잣대로 평가하고 급을 나누고, 그 중에서 가장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만 스스로 재밌다고 최면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쏠비치를 보면서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지불할 능력이 된다면 그 지위가 어울리는 사람인 것은 아닌가. 우리가 밥먹듯 솔비치에 오는 재벌 3세와 영끌해 간신히 한 룸 끊은 서민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위치는 그들이 누리는 것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닌 것이지 않은가. 또 한편으로, 그것을 누린다고 해서 그에 적절한 위치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누리는 가치와 그에 걸맞는 위치가 매칭되어 있긴 한 것인가. 사람들의 위치는 무엇으로 정해지며 그것에 걸맞는 것들은 무엇인가.


    이 글을 쓰며 내 자신에게 적잖이 실망했다. 스스로 사람들을 계급지어 생각하려고 하고 있었다. 고결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로 나누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자들은 이성적으로 깔보려고 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오만함을 반성하고 있다. 
     
    왜 나는 그런 생각을 자연스레 하고 있었을까. 그냥 커피 내리는 게 좋으면 하면되지, 사진찍는게 재밌으면 하면되지. 왜 이 모든것이 공통적인 욕망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같잖은 이유들로 묶어보려 애쓰고 있는가. 내가 지금 붙인 이유들은 있지도 않은 것을 내가 어거지로 붙인 것인가, 아님 잊고 있던 나의 저의를 파헤쳐 목도한 것인가. 나는 순수히 재밌어서 그러한 취미들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왔는데, 나는 내 속내를 스스로 속이고 있었던 것일까. 왜 나는 이것이 내 진짜 속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부정하고 있는가. 
     
    다음엔 내 속에 뿌리내린 엘리트주의에 대해 고찰해봐야겠다. 
     

    작가의 말
    이번 주제는 요상합니다. 
    글을 쓸 수록 머릿속이 정리될 줄 알았는데,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내가 내 생각대로 정직하게 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말.2.
    글로 쓰며 생각하다보니, 생각이 흐르는 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새는 대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헐렁하게 펜을 잡고 손을 막 흔들며 펜이 잉크를 흘리는 대로 글씨 를 써내려 가는 기분입니다.
    생각도 이제 좀 뇌리에 힘주고 해야겠습니다.
    졸려서 그런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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