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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리적 자결을 꿈꾼다
    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를 써보자 2023. 11. 23. 03:57

    요 근래 나의 삶의 방식을 설명하는 일이 잦았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 군것질 거리가 되었다. 골똘히 고민한 참에 글로 묶어낸다. 정리가 필요해보인다.

    이우드.


    일전에 말했듯 나는 내 인생을 열정 고리의 연속으로 바라본다. 열정이 끓어오르고, 그 열정이 삶에 기대치를 설정하게 한다. 그 기대치가 나를 옥죄이면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기만을 발버둥친다. 끝내 고통에서 빠져나온 순간 아무것도 안하며 무위를 즐긴다. 그렇게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면 다시 열정을 쏟을 것들이 보이며 새로운 열정고리가 시작된다. 

     

    이런 열정 고리로 삶을 살아가다보니 인생에서 잃고 사는 것들이 많다. 고통에서 발버둥치며 열심히 과제 기한을 미루다가 결국 과제를 엉망으로 제출한다던지, 너무 열정을 쏟아 밤새 몰두하다가 생활패턴이 깨져 몇 주를 고생한다던지. 열정을 원동력으로 살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실패하고 산다. 때로는 열정이 과도해서, 때로는 열정이 만든 고통이 나를 압도해서, 때로는 한 분야의 열정이 다른 분야를 묵살해서 일어난다. 

     

    나는 이렇게 잃는 것들을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희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원래부터 내가 거머쥐지 못했을 가치들인 것이라고 치부한다. 원래 내가 가지지 못할 것들인데, 그저 내 딴에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들이라고. 원래 나의 운명으론 그것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 마음이 좀 편하다. 

     

    세상의 모든 일을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비극적임과 동시에 고무적이다. 내가 지금 경험한 실패가 어찌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하면 무력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책임을 운명에 덜어낼 수 있어 심적으로 편하다. 내 인생에서 실패라고 느껴지는 것들은 원래 있어야 했을 인생의 고난들이고, 그것이 존재함에 내가 보탠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세상 모든 것에 겁이 없어진다. 매를 보고 맞으면 조금 더 이악물 수 있는 것처럼, 들어오는 고통을 더욱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다. 또한 실패에 내가 가담했을지라도 그렇게 게으르게 행동하는 것마저 나의 운명이었던 것으로 생각하면 '난 잘못한거 없어' 같은 안일한 생각이 든다. 따라서 고통에서 죄책감을 좀 덜 느끼고 살 수 있다. 고난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모하게 도전하고 살 수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어지는 행동들이 나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행복을 좆아 살아가려 하고, 성과를 위해 열정을 붓고, 좌절에 슬픔을 느끼고, 자책하고, 고통을 피하려하고... 이 모든 행동들은 가만 다시 돌아보고 곱씹어보면 '꼭 그렇지 않아도 되는' 부분들이 있다. 왜 우리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성과로 쌓아올린 인생을 살려고 하는가? 그런 성과를 얻는 방법이 노력하는 것인가? 노력이 곧 성과를 가져오는가? 성과를 왜 원하는가? 성과를 이루지 못함에 왜 슬픔을 느끼는가? 왜 성과를 이루지 못함이 내가 주체라고 생각하는가? 왜 우리는 고통을 싫어하는가?

     

    이 모든 것은 모두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 그 반대로 살아도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들이다. 다만 우리는 그 방향대로 '믿고' 사는 것이다. 그 느슨한 논리적 연결고리는 우리의 결심과 자기 최면, 혹은 세뇌에 의해 탄탄히 가리고 산다. 사실 까놓고 보면 엉성한 삶의 기둥들인데, 까보면 철근하나 심지 않은 모래기둥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런 가치들을 은연중에 우리의 사고방식에 심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위인이 된다면서 노력의 가치를 드높이고, 단상 위에 올라가 시상함으로써 성과가 좋은 것임을 가르친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모래기둥에 논리적 철근을 심지 않고도 그 위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발로 스스로 차버리지만 않는다면 잘 버티는 기둥인 것이다.


    "나는 내가 건너려고 하는 이 길에 횡단보도 초록불이 들어오면 그냥 건너. 어차피 이쪽은 차가 멈추는 시간이니깐, 내가 교차로 가까이에서 건너던 지금 여기서 무단횡단을 하던 보장된 안전은 같으니깐."

    "... 그게 뭐가 잘난 거라고 그렇게 뿌듯해하며 말하니? 너같은 애들 때문에 운전하기가 피곤하다, 야."


    나는 이런 모든 모래기둥들을 파괴하고 산다. 나는 우리의 노력이 성과에 가까워지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행복을 좆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내가 즐겁다고 느끼는 것이 옳다고 느낀다. 이렇게 나만의 모래기둥을 다시 세우고 산다. 세상이 쥐어주는 모래기둥들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그로써 그 기둥들이 모두 없어도 되는 것임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나는 세상의 모든 가치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때론 일부러 그 반대의 입장이 일부러 되어본다. 누군가는 이를 피곤하다고 받아들이고, 괜한 시비를 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것이 보기에 심히 걸리적거리니깐. 하나의 가치가 굴복할 때까지, 혹은 내가 설득되어 굴복할 때까지 열심히 때려부순다.  


    선배가 묵직한 유리 생맥잔을 차분히 내려놓고 윗입술에 묻은 거품을 빨아핥으며 물었다.

    "대학을 다니는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고 살아요?"

    각자 대학을 다니는 의미를 한창 설명하고 나서 내가 되물었다. 

    "선배는 왜 대학을 다니는 의미를 찾으려고 하세요?"

    "저는 그 순간에서 가장 뽕뽑을 수 있는 만큼의 의미를 뽑으면서 살려고 노력해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질문했다. "왜 순간순간의 최대 의미를 뽑으며 살려고 하세요?"

     

    사실 그것은 나에게 하는 반대 질문이었다. "왜 모든 순간에 의미를 최대한 느끼지 않고 살려고 하세요?"

    나는 대답했다. "세상엔 본래 의미란 없고, 다만 사회가 쥐어준 의미만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사회가 쥐어준 의미를 배격함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려고, 그 반항심에서 의미를 느끼지 않고 살아요."

     

    "심지어, 그 의미라는 개념 자체도, 우리가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이 사고 흐름 자체도, 모두 사회가 언어로 만든 허상이에요. 아이러니 하게도, 저는 이 논리 라는 허상을 통해 그것이 허상임을 밝히고 있네요."


    내가 차분하게 살게 된 것은 삶에서 의미를 모두 놓았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세상의 모든 가치를 무너뜨리고 내가 원하는 가치만을 세우고 살게 됨으로써 내가 뜻하지 않은 것들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고 내가 원하는 것에만 힘주고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열정을 쏟아붓는 그 행위에서 스스로 주체감과 몰입감을 느끼고, 그것에서 보람을 느낀다. 그 행위가 낳는 부산물인 성과와 새로운 기회들은 세상이 나에게 주는 뜻밖의 서프라이즈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는다. 실패로 인해 더욱 누릴 기회가 적어진 것 마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나는 이렇게 삶에 있어 매우 뿌듯함을 느끼고 산다. 내 스스로 나의 감정과 나의 세상을 주무를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좋다. 아직까지 고통은 피하고 싶고 맛있는 음식은 행복을 주지만, 그것들 속에서 헤엄칠 때 특유의 재미를 느낀다. 고통을 몰입해 온정신으로 느끼는 스스로를 보며 요상한 재미를 느끼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좋아하는 나 자신을 보며 흥미로움을 느낀다. 나는 순간을 온전히 맞이하여 주어진 역할을 연기함으로써 그 자체로 여행의 재미를 느낀다. 


    사회적 눈으로 볼 때 나는 아주 쓸모없는 존재이다. 성공을 위해 노력하려 하지 않으며, 싫으면 곧바로 관두고, 납득이 될때까지 부정한다. 지 뜻대로 살고 다른 사람의 논리를 조목조목 따지고 든다. 아주 답답MZ 그 자체이다. 그렇게 비춰져 그대들에게 고통을 준다면 나는 '유감이다' 라는 말밖에 할 것이 없다. '어쩔 수 없어. 누가 뭐래도 난 이렇게 살 것인걸. 꼬우면 나를 죽이던지.'

     

    하지만 항상 그렇게 파괴적으로 반항적으로 살다간 돌팔매질로 생을 일찍 마감할 수 있으니, 현생 속에서 내 뜻대로 사는 방법을 찾고 산다. 내 뜻대로 살고 싶은 욕구가 크다.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갔으면 하는 욕구가 크다. 그렇기 위해서 세상이 돌아가는 방법을 이용하는 꼼수를 찾으려 노력하고, 세상을 내뜻대로 조련하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결국 내가 세상을 재창조해서 사는 길이며,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며 사는 방법이다. 주어진 세상에서 주어진 삶을 주어진 방식대로 느끼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기 위해 세상을 원하는 대로 바꿔서 바라보고 산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살고 싶은대로 사는 방법'이다. 

     

    다만 나는 내 기둥을 세우고 살면서도 다른사람들의 기둥을 걷어차려고는 하지 않는다. 나의 기둥 속에서 세상이 돌아가고 싶은 방식대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 성취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취하려고 노력하고 산다. 행복이 제일가치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행복을 내멋대로 빼앗지 않는다. 이렇게 나만의 기둥들을 사회의 기둥들 사이에 성공적으로 융화시키는 것이 내가 살아가려하는 방식이다. 


    자타공인 부대내 에이스였던 나에게 그 누구도 전문하사(의무 군생활을 연장해 간부로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를 권유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사회에 더 큰 목표가 있어보였더랬다. 얼른 전역해 성공적인 삶을 이룰려고 할 것 같다고 했다. 놀랍게도 나는 그정확히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군대에 말뚝 박을까.

     

    내가 말뚝을 박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그러면 안될 것 같아서"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은 휴학기간동안 좋은 알바거리이고 몸도 적응해 편한 이 부대 생활을 전역으로서 끊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느꼈다. 이 지점에서 전역하지 않고 전문하사를 선택하게 되면 그렇게 군대라는 집단으로 빨려들어가 다시는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오히려 그것에 끌렸는지도 모른다. 이 길로 가다보면 내 인생은 내 마음대로 헤어나오지 못하게 불능해진다는 것이.  인생의 주도권을 주체적으로 놓는다는 것이 왜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을까. 

     

    자살은 주체적인 파괴이다. 힘써 스스로 불능이 되는 것이다. 불가역한 상황에 자신을 밀어넣는 행위이다. 세상에 자살 만큼이나 완결적인 파괴행위는 따로 없다. 그 완결성, 다시 빠져나오지 못함을 내가 선택할 수 있음이 나를 현혹시킨다. 뫼비우스의 띠를 보는 듯 아름답다 느낀다.


    모든 프로그램에는 삭제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다. 그 삭제 프로그램은 차근차근 자신의 모체를 부수고, 마지막에는 삭제 프로그램 그 자체도 스스로 삭제하며 일을 완수한다. 

     

    꽝꽝 얼은 저수지 얼음 위로 폴짝 뛰어 올라 탄다. 이 호수의 모든 얼음을 깨부수리라 마음먹고, 저 멀리부터 깨부수며 후진한다. 어느덧 모든 얼음은 다 부수고, 마지막 남은 얼음은 내가 그 위에 올라타고 있다. 이것을 부숨으로써 나는 파괴되고, 나의 소임을 다한다.  


    모든 의미를 부수다보니, 그 의미를 부수기 위해 들었던 '논리'라는 망치와 '나의 사고'라는 발밑 땅 마저도 부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요즘은 '이건 어떻게 부수지..' 하고 고민하며 산다. 어찌보면 데카르트의 말대로 논리라는 망치로는 내 발밑 땅은 부수지 못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고, 논리라는 망치 말고 다른 적절한 도구, 말하자면 비논리적인 도구는 어떻게 적절한지 알지, 하고 고민한다. 비논리적인 사고가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논리주의의 자결방법을 찾고 있다. 

     

    작가의 말
    오랜만에 글을 잡게 해준 태준 형님과 준규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작가의 말.2.
    사진을 넣어보아라, 라는 조언을 듣고 넣은 첫번째 사진엔 제가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글을 한동안 안쓰니 손끝이 근질근질하고 머리가 무겁습니다. 오랜만에 시원하게 써내려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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