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학문의 길을 접은 이유 (1)
    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를 써보자 2023. 10. 4. 14:16

    나는 민사고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물리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학문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이 삶의 큰 낙이었다. 고등학교 동창들은 내가 컴공과로 전향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소 놀란다. 어떻게, 학교에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학문을 파던 사람이 가치관을 크게 바꿨을까.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물리학이 정말 좋았다. 정확히는, 물리학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이를 잘 정리된 논리체계로 설명해내는 과정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물리학을 보고 있으면 딱 맞춤 제작된 애플의 패키징을 보는 느낌이다. 빈틈없이 현상을 정확히 설명해내는 모습이 마치 제품을 유격 없이 상품을 감싸는 폼케이스를 보는 쾌감을 준다.

    방정식들이 내포하는 세상의 원리들을 듣는 것이 정말 재밌었다. 그 물리학자는 이 원리을 어떻게 이렇게 정갈한 하나의 방정식으로 설명해낼 수 있는가, 하는 그 함축의 미학에 매료되었다. 하나의 방정식을 이해하는 것 만으로 세상의 큰 기둥을 이해하게 되는 듯한 시야의 확장이 엄청난 기쁨을 주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나는 물리학을 배우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었다. 물리를 좋아해 고교 물리 실험 동아리 '혜움나래'를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이 동아리 활동에서 겪은 좌절들, 고민들이 나를 결정적으로 변화하게 했다.

     

    혜움나래에서 우리는 KYPT 라는 대회에서 출제하는 문제들을 푸는 활동을 했다. 출제되는 문제들은 이런 것이었다. '모래산은 일정 각도 이상으로 세울 수 없다. 그 유지 원리와 각도 결정 요인에 대해 논하시오.' 세상의 특이한 물리적 현상들을 실험실에서 구현하고, 관찰하고, 이를 설명하는 이론적 설명을 구축해내는 것이 우리 동아리의 활동이었다. 매년 주어지는 주제를 연구해 논문을 작성하여 발표하고, 같은 주제로 연구를 한 다른 팀의 비판에 대항하여 자신의 이론적 설명을 방어하는 토론을 하는 것이 이 대회의 흐름이다. 

     

    나는 다양한 주제를 맡아 연구를 했는데, 이 과정이 나에게 엄청나게 힘들었다. 주제에서 설명하는 현상을 재현해내는 것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이를 물리적으로 해석해내는 것이 큰 물리적 창의력을 요구했다. 나의 연구 중 가장 열심히 연구했던 현상을 관찰한 영상이다. 이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영상 속 목소리는 모두 제가 아닙니다..)

     

    물리학은 배우는 사람들이 만든 학문이 아니다. 연구해서 설명해내는 사람들의 학문이다. 혜움나래의 경험을 통해 나는 물리학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물리학도가 되고 싶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혜움나래의 경험을 통해 연구에 대한 시각을 경험했고, 학문에 연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배웠다. 

     

    하지만 나는 연구가 어렵다고 생각해서 학문의 길을 접은 것이 아니다. 연구의 의미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학문의 길을 접게 되었다. 

     

    (후편에서 이어집니다.)

    '나의 글, 나의 노래 > 에세이를 써보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문의 길을 접은 이유(2)  (0) 2023.10.06
    학문이란 무엇인가  (0) 2023.10.05
    자유로운 영혼  (6) 2023.09.27
    생각 안하고 사는 삶  (0) 2023.09.26
    어푸어푸  (0) 2023.09.25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