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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안하고 사는 삶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를 써보자 2023. 9. 26. 08:00
생각해보니 나는 생각없이 사는 삶을 꿈꾸고 있었다.
그렇게 깨닫게 된 나의 삶의 모습을 보자.
모습 1. 군대가 편했어요
가끔 현생이 힘들면 나는 군대 때를 회상한다. 나는 개꿀 부대를 나와서 군생활이 편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적응이 빨랐고 일이 쉬웠다. 보기 싫은 사람들을 보는 것은 군생활이 끝날 때까지 골칫거리였지만, 이를 제외하면 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이었다.
아침에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밥 사먹을 용돈 걱정도 없고, 일은 매일 반복적이고, 출퇴근 시간도 보장되었고, 그 외 시간에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12시까지 연등 신청해 공부하고 막사로 올라와 불꺼진 휴게실에서 유일하게 꺼지지 않는 음료냉장고의 내부등에 의지하여 노트를 글로 채우곤 했다.
근무시간에는 글을 썼고, 저녁시간에는 운동을 했고, 주말에는 도서관 정리를 했다. 매주 똑같이 흘러가는 것이 다분히 타임루프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부대 안에서는 전역만을 기다리는 것 외에 인생에 바라는 것이 없으니 나름대로 살만 했다.
세상 온갖 풍파를 임기응변으로 받아내다 보면 그 때를 자연히 그리워하게 된다. 내일 뭘 해야하는지 훤히 보이고, 내가 열심히 하는 일에만 시간이 흐르는 기분. 세상이 나에게 기대하는 가치수준도 낮고, 내가 이 삶에 바라는 바도 적다. 따라서 나는 물리적 바운더리 내에서는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몸인 것이다. 사람들이 전문하사 하고 말뚝을 박는 그 심정을 공감하게 되었다.
내가 전문하사를 감행하지 않은 이유는 '이대로 고일까봐'이다. 군대는 안정적인 삶의 궤적인 대신 그 삶의 궤적이 큰 폭으로 변하지 않는다. Give and Take 인 것이다. 삶이 안정적인 대신 변화는 적다. 사실 똑같은 말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사회는 내가 변화할 폭이 넓은 대신 낙오할 위험도 크다. 나는 지금 안정을 추구하고 싶더라도 스스로 다시 리스크 속으로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냄비속 개구리가 되어 익어죽어버릴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공포가 있었다.
모습 2. 루틴이 좋아요
항상 의욕이 넘치는 열정고리의 시작 시즌에는 루틴을 이것저것 세운다. 루틴을 잘 세워서 이를 지켜나가는 것이 매일매일의 행복이다. 루틴을 체화해서 정해진 순서대로 생활하는 것이 좋다. 아무 생각 안해도 갓생을 살게 되는 기분. 갓생을 사는데에 땀이 나지 않는. 그런 멋진 삶을 지향한다. 매번 그 루틴이 무너지는 순간들이 오지만, 잠시 축 쳐젔다가 얼마 안가 또 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루틴을 좋아하는 이유는 삶에 있어 계속 앞날을 걱정하고, 앞으로 할 일이 얼마나 남았는지 한숨쉬고 하는 과정들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오래달리기를 할 때 바퀴수를 세고 있으면 매 순간순간이 고통스럽다. 하지만, 바퀴를 세는 대신 온 몸이 보내는 신호에 집중하고 있으면 시간 관념은 다르게 흘러가고, 긴 여정을 어느새 마치게 된다. 긴 싸움에서 버텨야 하는 것은 그 길이가 아니고, 그 길이를 시시각각 지각하고 '힘들어하려 하는' 나 자신이다.
모습 3. 잠수, 명상, 커피마시기, 잠자기, 음악이 좋아요
내 취미들은 그 온도 면에서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 가만히 있기 위한 취미와 무언가 쟁취하기 위한 취미. 전자를 휴식형 취미라 부르고, 후자를 생산형 취미라고 부르자. 생산형 취미부터 소개하자면 기타치기, 사진찍기, 글쓰기, 식물 키우기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뭔가 내가 한 분야에서 어떤 경지에 이르고 싶어 꾸준히 하는 것들이다. 이들에겐 목표가 있고 열정적이고 짜릿하다.
한편, 휴식형 취미에는 커피마시기, 명상, 음악듣기, 잠자기, 그리고 잠수가 있다. 이들은 모두 내가 '아무 생각 안하기 위한' 취미이다. 커피를 한잔 내려두고 가만히 의자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다가 한모금 마신다. 천천히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위를 즐긴다. 명상도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상황이 좋아서 한다. 잠수와 음악은 머릿속이 음향적 자극으로 가득차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잠자기는, 뭐. 생각을 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라고 받아들인다.
이런 모습들을 잘 톺아보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열심히 생각하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만큼 생각하지 않길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이전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독후감에도 썼던 것 같은데, 나는 별의별 생각을 끝없이 하는 사람이다. 그 것이 나의 큰 무기인 동시에, 나의 큰 스트레스 원천이다. 양날의 검이다 이거야.
머리가 쉬지 않고 돌아가니 하루에도 쌓이는 생각들이 정말 많다. 그것들을 어떻게든 그물쳐서 잡는 것이 나의 글쓰기이다. 하지만 때로는 시동을 끄고 싶다. 생각을 하지 않는 시간이 있어야 생각을 하는 시간에 세차게 돌아가기도 하고, 생각도 끊임없이 하다보면 그 길이에 한계가 오기 때문이다. 좋은 생각들이 갑자기 틱하고 끊기는 순간들이 오는데, 그 때 진짜 안타깝다. 내가 방금 무슨 주제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완전 망각하는 기분, 아주 손해 막심한 기분이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적으며 생각하고, 머리를 쉬는 시간을 보장한다.한편으로 생각해보면(ㅋㅋ), 나의 상념들이 세차게 돌아갈 수 있도록 쓸데없는 연산을 줄이려하는 것 같다. 골똘히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니깐,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 생각대사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내 머리는 한정된 속도로 흐르는 데다 멀티태스킹이 안되기 때문에, 프로세싱을 잡아먹는 기타 프로그램들을 절전모드로 돌려야만 원하는 프로그램의 원하는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군대에서 맘편히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군생활에서 이뤄야하는 의무, 욕구가 그 어느것에도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현생에서는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등 생존을 위해 물갈퀴질을 멈출 수 없지만, 군생활에선 그냥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를 모방해 나의 삶을 루틴으로써 저절로 흐르게 하고, 그 위에 동동 떠서 양 팔을 머리 뒤에 베고 누워 풍광을 즐기고 싶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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