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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문이란 무엇인가
    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를 써보자 2023. 10. 5. 18:32

    --- <학문의 길을 접은 이유> 시리즈의 배경을 닦는 번외 시간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관심가지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더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호기심이라 부른다. 우리 호기심의 대상은 자연이 될 때도 있고, 소리가 될 때도 있고, 인간군상이 될 때도 있다.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욕망이 해소되었다고 느끼며, 그것을 쾌감이라고 인식한다.
     
    우리의 호기심은 어디서 기원하는가? 왜 우리는 그 어떤 것이던 '알려고 할까'? 그리고, 우리의 호기심의 방향은 왜 개인마다 각기 다를까? 왜 어떤 과목에선 호기심이 들고 충족되면 기뻐하고, 어떤 과목은 호기심이 들지 않을까? 호기심이란 도대체 뭘까!

    우리가 호기심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이성적인 가치를 좇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이성적으로 사고한 결과물은 진리이다. 이성적으로 사고한 결과물들은 진리이며, 따라서 그 누구에게도 옳다고 받아들여진다. 그것이 '옳음'의 정의이니깐.우리가 생각하고 한 행동은 옳다. 우리는 생각을 먼저 하고 행동을 하는 동물이다. 
     
    우리는 이성적인 가치를 신봉한다. 르네상스를 거치고 인본주의적 사상을 받아들이게 된 우리는 스스로 위대한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다. 우리의 사고는 숭고한 것이고, 그 정제된 과정과 순수한 결과물을 '진리'라고 믿는다. 따라서 우리가 이성적인 사고로 구축하는 '지식구조'라는 거대한 '진리 덩어리'는 철저하고 티없는 결정체이다.
     
    위 두 문단에서 쓴 모든 문장들은 단언적인 말미를 썼다. 하지만, 이 모든 문장은 '...한다고 믿는다' 라는 말미가 생략되어 있는 문장들이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믿고, 그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얻은 결과물들이 세상의 진리를 파헤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옳게 행동하길 원한다. 우리는 생각을 먼저 하고 행동을 하는 동물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그저 허황된 바람이라는 것을 토머스 쿤은 이야기한다. 


    토머스 쿤의 그 유명한 서울대 필독서 <과학혁명의 구조>는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패러다임은 우리가 옳다고 믿는 지식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패러다임 전환의 대표적인 예, 천동설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열심히 하늘을 쳐다보며 '음, 해달별은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군.'하고 '이성적으로' 천동설 패러다임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케플러가 지구가 공전 중심이 아닌 위성들을 발견하고,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에 힌트를 얻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태양 중심으로 모든 별들을 공전 궤도를 맞춰보게 된다. 이를 통해 인류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 전환을 하게 된다.  
     
    토머스 쿤은 이런 일련의 패러다임 전환의 과정이 우리가 과학을 하는 과정이고 이유라고 설파한다. 우리는 세상의 진리를 열심히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모방진리들은 끊임없이 수정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수정이 아니고 새로운 파일을 만들어야 할 지경인 때에 도달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큰 고통과 함께 새로운 패러다임을 재구축하게 된다. 
     
     나는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으며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그렇게 진리라고 배워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진리가 아님'으로 판명될 수 있다는 것이 내게 큰 깨달음이었다. 우리가 진실이라 믿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시야 안에서 옳다고 판명한 것이고, 새로운 반례를 찾게 되면 언제든 소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었던 뉴턴의 물리학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재구축되었고, 그 마저도 양자역학과 열심히 맞춰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세상의 진리를 찾으려 하는 분야는 비단 물리학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한때 계급제도가 옳다고 받아들였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때는 태양이 신이라고 믿었고, 지금은 항성이라고 믿는다. 누구는 공리주의가 옳다고 생각하고, 누구는 정언명령이 옳다고 생각한다. 
     
    조금 결이 다른 논의이긴 하지만, 수학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평행선은 만나지 않는다고 당연히 생각했는데, 수학을 공부하다보니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 하며 '만약에 공간이 휘어있으면 평행선도 만나지 않을까?' 하는 학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학을 잘 들여다보면, 모든 것은 Axiom 이라고 하는 "그렇다고 전제하고, 의심하지 말자"는 식의 주춧돌들이 있다. 우리는 그 위에서 열심히 거미줄을 쳐가며 탄탄한 마룻바닥을 만들고 건재한 집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모질게 표현하자면 Axiom 이라는 문학적 아이템들을 기반으로 쓴 소설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2+2=4 가 진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또한 우리의 관념적인 동의인 것이다. 그렇게 믿던 수학마저, 사실은 '인간 한정 진리'인 것이다. 
     
    우리는 학문을 쌓으며 진리를 알아가는 것이 아닌, 진리를 보고 따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최대한으로 면밀하게 관찰하고, 정확하게 베껴 그리려고 한다. '우리의 최대한'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그냥 그럴싸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학문은 별 것 없다. 그저 우리 이성중심사회가 표방하는 가치이자 우상이며, 우리의 신이고 우리의 정승이다.
     
    학문은 인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종교에 불과하다. 이 모든 학문적 충돌, 계승, 변혁, 개정은 모두 '우리는 옳은 것을 좇는다는 공통된 이념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학문을 쌓는가? 우리는 왜 지식을 쌓는가? 우리는 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시공간을 초월한) 진실 이라고 믿을까? 학문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학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연구란 것은 무엇인가? 
     
    (<학문의 길을 접은 이유> 시리즈에서 이어집니다..)
     

    작가의 말
    이번 글 또한 상고의 시간이 길어져 연재가 늦었습니다. 
    그래도 제 큰 고민을 정리해내니 뿌듯합니다. 

    속죄의 의미로 예고편 올려드립니다.

     
    예고편
     
    정치철학 수업 중, 황소희 선생님이 강의를 하신다.
    "...그래서 한때는 우리 지구가 코끼리에 받쳐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에요. 하지만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 학생 있나요?"
    선생님이 말씀을 멈추자 교실이 조용하다. 짧은 정적 후 학생들이 미소를 띠며 연한 콧웃음을 친다. 선생님도 따라 웃으시며 강의를 이어가신다.
    "이런 논의는 지금도 이뤄지고 있대요. 누구는 지구가 아직도 평평하다고 믿는대요. 그 사람들은 스스로 지구평평이, flat-earther 라고 부르고, 지금도 열심히 지구가 평평한 증거를 찾아내려고 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지평이들의 상상도를 TV화면에 띄워주신다. 학생들이 재미있는듯 깔깔대며 웃는다.
    "이 사람들은 나사가 우주선을 쏘아 올려서 지구를 찍은 사진을 내밀어도, '이거 디즈니랑 합작한 합성물이잖아' 한대요. 정말 웃기죠? 설마 이 안에 지평이가 있진 않겠죠?"
     
    이우드가 슬그머니 손을 든다. 이우드와 선생님의 눈이 마주친다. 선생님의 표정엔 당황의 기색이 역력하다. 교실이 단숨에 조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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