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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보단 연출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를 써보자 2023. 9. 21. 12:57
어제의 나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나의 논리가 비일관적이라고 느껴졌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 하는것 부터 이미 사진가의 미적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름다움을 담으려 노력한다. 마음에 드는 구도를 찾으려 노력하고 또 그런 시각으로 좋은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을 구별한다. 그렇다면 나의 관점, 나의 주관, 나의 시각이 사진을 기록하는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구도 연출은 그럼 어디에 속하는가. 구도 연출은 이 공간에서 가장 아름답게 담길 수 있는 위치로 카메라를 가져가는 것이다. 즉, 주체적으로 좋은 장소를 찾아 가는 것이다. 그것도 주관적인 판단기준 하에. 이는 그렇다면 가장 좋은 기록을 남기는 것과 동시에 가장 좋아하는 기록을 찾는 것 아닌가?
순간에서 가장 좋은 빛과 구도를 뽑아내려 하는 것과, 이미 담겨진 사진에서 더 아름답게 가미하는 것은 과연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마치 이런 것과 같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최대한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과, 여러 향신료의 조화로 복합적인 맛을 창조해내는 것의 차이이다. 두 예시 모두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목적은 같으나, 이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 다른 것이다.
지금 두가지 관념을 혼동해서 사용하고 있다. 지금 있는 것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찾는 것과,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편의상 전자의 경우를 절대적인 시각이라고 부르자. 그리고 후자의 경우를 주관적인 시각이라고 부르자. 절대적인 시각은 현 시공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 장면이 '내 주관과 관계없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을 열심히 유추하고 찾아나서는 것이 사진사가 할 일이다. 반면 주관적인 시각은 사진 장면은 전적으로 '내 주관에 의해' 그 아름다움이 결정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내가 장면을 연출하고 조절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하는 것이 맞다.
나의 이전 글의 입장에 비추어 생각하면, 나는 절대적인 시각에 가깝게 생각하지만, 주관적인 시각에 기반하여 사진을 찍고 있다. 어찌되었든 내가 열심히 구도를 찾으며 '나의 미적 잣대'로 구도를 찾기 때문이다. 즉, 절대적인 시각을 믿는다고 해도 이를 현실적으로 좇으려면 주관적인 시각을 통해야 한다. 사진은 언제까지나 그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가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
구도 연출도, 후보정도, 심지어 촬영하는 과정 모두가 주관적인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록함에 있어 원하는 것만 기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적인 시각을 보유할 수가 없으며, 우리가 가진 시각이 절대적이라고 증명할 방법도 없다. 따라서, 절대적인 시각은 무용지물인 이데아인 것이다.
사진은 보통 연출 - 촬영 - 후보정의 과정을 모두 거친다. 다만 나는 연출 - 촬영으로 끝내는 것이고, 후보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후보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전단계 과정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과 같다. 정 틀린 것 같다 싶으면 라면스프 넣으면 되지, 와 같은. 그런 안일한 발상이 그 전단계에 심혈을 덜 가하게 만든다. 물론, 아주 심혈을 기울인 사진도 후보정을 하면 더더욱 아름답게 만들 지점들이 분명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골몰해보니 이는 비일관적인 고집인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내가 마음에 드는 사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게 사진가의 역할이다.
보정에 대해 배우고 싶다. 그 후에 판단하고 싶다!작가의 말
사유가 길어져서 업로드가 늦었습니다.
기한보다 완성도를 더 우선시하겠습니다만, 하루를 넘기지 않아보겠습니다.'나의 글, 나의 노래 > 에세이를 써보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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