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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비싼 취미이다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를 써보자 2023. 9. 22. 11:44
소비는 욕구의 합리화 과정이다. 따라서 그 어느 이유를 붙여도 내가 말이 된다 생각하면 맞는 논리인 것이다. 개인적인 욕구를 머리로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한 개인적인 사고과정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 논리흐름이 객관적으로 옳을 필요는 없다. 오직 나에게 납득이 되기만 하면 된다. 그 판단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1) 이것이 나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가 (2) 경쟁 제품들 중 어떤 것이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줄 수 있는가 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음료를 먹으면 갈증이 해소될까' 고민하는 것이 (1)번이고, '콜라가 좋을까 펩시가 좋을까' 고민하는 것은 (2)번 고민이다.
나는 항상 (1)번 고민에서 자기제어를 한다. 과연 내가 저것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이 나에게 어떤 과정으로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 과정에서 그 어느 부분이라도 석연치 않으면 구매하면 안되는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생각하고 물건을 사다보니 짠돌이가 되어버렸다!
소비욕구는 '내것'을 가지고 싶다는 가장 근원적인 욕구에서 파생된 것이다. 내가 온전히 다루고 보장받을 수 있는 '소유'라는 개념이 마음의 안식을 준다. 만약 이 물건은 언젠가 반납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필요할 때 없을까 걱정된다. 반면 내가 구매하고 오직 나만 사용한다면 내가 필요할 때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애플병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욕구는 그에 준하는 무언가를 가지지 않는한 해소되지 않는다. 내가 누리지 못한 가치에 대한 미련이 오래 남는다. 항상 못먹어본 떡이 더 맛있어 보이는 법이지. 견물생심이 무서운 것이다.헛소리는 그만하고, 내가 렌즈를 사게 된 과정을 적어보자.
85mm 화각 렌즈가 너무 사고 싶었다. 이번 학기 인물 사진을 많이 연습해보려고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85mm 로 찍은 사진들이 심도 표현도 적절하고 아웃포커싱도 잘 되어 예쁘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 후, 나에게 85mm 는 인물 사진을 찍기 위해 갖춰야 하는 예의,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불필요함이다. 지금 용돈도 넉넉치 않고, 이미 30mm (환산화각 45mm) 렌즈도 있기 때문에 '지금' 사야 할 이유는 없었다. 계속 마음에 걸려 중고장터만 찾아보기만 하고 구매를 망설이고 있었다. 여기서 나의 아전인수 논리가 여럿 등장한다.
첫째, 언젠가 소비할거라면 일찍 사는 게 내가 사용할 시간을 더 늘리는 전략아닌가? 쓰는 돈은 언제나 같을 것이고, 혹여 가격이 오를 수도 있고 한데, 일찍 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시시각각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둘째, 돈은 다음달에 들어올 것이다. 멘토링 프로그램도 하고, 추석도 있고, 이것저것 벌이도 만들고 있으니, 돈은 천천히 들어온다. 그때 가서 사나, 지금 사고 나중에 돈을 채우나, 결과적으로는 플러스 마이너스 해서 같은 잔고가 나온다. 즉, 내가 지금 지불할 수 있으면 지금 지불해도 무방한 것이다. 셋째, 쉽게 오는 매물이 아니다. 보통 20만원 선을 웃도는데, 지금은 내가 본 가장 낮은 가격이지 않은가! 넷째, 이것은 이후에 들어올 돈에 대한 투자이다. 이 렌즈로 연습해서 인물 스냅사진 부업을 하면 뽕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비는 마치 살아가기 위해 밥을 사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수많은 논리에도 마음이 석연치 않자, 나의 비장의 전략을 사용했다. 그래, 이성적 논리가 나의 소비를 가로막는다면, 비이성적인 순간에 구매해버리자. 심신미약으로 집행유예 받을 수 있겠지(내가 이 변명을 이용해먹다니, 성악설은 과학이다). 배고플 때 마트에 가지 말라고 했던가. 그래, 먹고 싶은 거를 꼭 먹어야 한다면 배고플 때 사는거야. 그래서, 나는 마침 아침을 굶은 날 점심 낮잠을 자고 일어나자마자 구매를 눌렀다. 술취한 상태 그 다음으로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비이성적인 상태이다.
그렇게 해서 결제하고 지금 배송이 오기까지 30분 남았다. 얼른 써보고 싶다!
작가의 말
글을 쓰다가 날라갔어요.. 수시 저장을 생활화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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