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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역휴학
    나의 글, 나의 노래/감자 글 2022. 6. 25. 08:06

    2022/03/12 02:56
    나에게 당연하듯이 주어졌던 유년의 인간관계는 애매한 졸업과 함께 이미 우그라들었고, 사회에서 잠적한지 넉잡아 2년. 이제 나에게 남은 이라곤 내 차가온 두손으로 데리고 나온 내 은행나무 새싹 뿐이었다. 인연이 뿔뿔이 흩어짐이 사뭇 서운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예상외로 즐겁다. 혼자 생각하고, 방해없이 산다. 생각했던 것을 행동해보고 감상한다. 내가 취업 걱정을 해, 학업 걱정을 해, 아님 군대 갈 걱정을 해? 아무 걱정 없어, 역시 백수가 최고야.
    돈을 이빠이 벌어서 잊혀지고 싶다. 여행을 왜 다들 하고 싶어할까. 새로운 경험이 도처에 놓여있고, 나의 모든 선택이 곧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걱정 없이 방랑하는 삶을 살고 싶다. 의미 없이 걷는 것. 분주한 무위.
    군대에서 침전의 시간을 보내며 식물에 취미를 들여봤다. 기왕 할 때 힘 줘서 다 하는 스타일이라, 씨 발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은행, 도토리, 밤, 단풍 등 도천의 구할 수 있는 온갖 종자를 구해 싹을 틔워보았다.
    무엇을 하든, 그 시작이 가장 밝게 빛나는 순간이다. 그 밝은 시작이 그 이후의 시간들을 단단히 하고 정을 붙이게 만든다. 식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발아를 찾아보고, 싹을 틔워 군에서 데리고 나왔다. 최근의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싹 틔우는 데 맛들린 나는 제대하자 마자 이것저것 다 심어보고 다 발아해보고 있다. 파는 뿌리 그대로 심으니 우후죽순으로 자라고, 콩도 어엿하게 자라 덩굴 탄다. 사과씨도 4개 중 3개가 말라죽고, 같이 제대한 은행싹들도 하나만 남고 모두 뿌리가 썩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순간들이 남은 이들을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식물을 키우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은 유목생활을 하다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식물은 정착생활을 하다가 일순간 유목생활을 하고, 다시 정착을 해 그 다음 유목을 준비한다.
    '유목 속의 정착'의 삶을 살고 싶다. 길게 머무르다가 갑자기 타지에서 다시 시작해 머무르기. 점선 같은 삶을 살고 싶다. 휴대폰 배경화면 바꾸듯 이따금씩 삶의 테마에 변화를 주는.
    .
    아이러니하게도, 전역하고 좀처럼 밖에 나가질 않았다. 같이 저녁먹을 소중한 가족이 있기에. 같이 수영장도 가고, 나들이도 갈 사람들이 있기에. 훌쩍 떠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정착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스스로 되뇌이길 '효도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온전히 부모님과 추억을 쌓고 즐길 마지막 기회'다. 여행, 공부, 운동, 그런거 이 짧은 8개월 동안 이루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내가 부모님 곁에 머무를 수 있는 황금같은 시간이다. 그들과 같이 있다는 것 그 자체로 행복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대가없는 수고에 감사를 표하고, 훗날 멀리 이별할 때 '잘 가'라며 미소지으며 눈물 닦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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