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1 12:26
오늘 해볼 이야기는 최근 들어 많아진 진로 고민에 대한 이야기이다. 되게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공부가 정말 안되면 심심풀이로 읽기를 추천한다.
(1) 물리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다
잘 알다시피 나는 원래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3년 동안 열심히 물리의 폭을 넓혔다. '와! 정말 재밌다!' 정도의 열정은 아니었지만, 내가 하는 것 중에 가장 재미있는 활동이 물리 공부였다. 현상을 관찰하고, 왜 일어나는지 고민해보며 상상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혜움나래였지만, 이는 내가 아직까지도 잘한 선택이라고 말하기 망설여지는 선택 중 하나이다.
혜움나래를 하면서 실험물리에 입문하고 나서, 물리 진로에 대해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맡은, 그리고 흥미 있어한 분야는 유체역학이었다. 찐득거리는 액체의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 전공책을 펴봐도 수학이 어렵고, 그 개념 자체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실험하는 것이 정말 고되었다. 도대체 통제가 되지 않는 점성 유체를 가지고 하다보니 설거지도 많이 해야 하고, 찐득거리는 불쾌감과 싸워야 했다. 점차 물리를 피했고, 내가 물리를 이끌어갈 학자가 될 그릇인지 낙담하게 되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학술제 기간이 끝나고 정말 힘들었다. 내가 2년 동안 연구한 유체 실험(내 본계 프로필사진)을 출품하는 대신 친구들과의 미숙한 연구를 제출해야 했는데, 추천서 샘인 김연수가 유체 연구하는 것을 그만 하고 친구들과 하는 연구에 집중하라 했기 때문이다. 내 논문이 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제출할 수 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내 2년 연구는 내 대입에 대해 그저 낭비한 시간이 되었다. 대입을 위해서 연구를 한 것은 아니지만, 누구에게 인정받고 이로 대학을 가고 싶었기 때문에 좌절감이 크게 들었다.
(2) 컴퓨터에 대해 알게 되다
여러 이유로 물리에 대한 흥미를 잃어갈 때, 나는 java에 대해 알게 되었다. 프로그래밍2를 배우고 나니 프로그래밍의 무궁무진한 창조성에 정말 놀랐다. 컴싸 조별 숙제였던 Chatbot 구축도 하며 정말 재미있었다. 나는 여러 컴퓨터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여러 컴퓨터 기술들에 대해 흥미를 늘려갔다. 이 분야도 생각보다 훨씬 큰 지식의 바다라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물리를 처음 배웠을 때와 같은 느낌을 느꼈다. 이 지식의 바다에 나를 맡기고 싶은 마음. 컴퓨터 분야는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아직까지도 수요가 더 많은 상황이다. 말하자면 아직까지는 블루오션인 것이다. 그래서 더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나서, 실생활의 여러 문제에 부딫히면 프로그래밍으로 어떻게 구현하면 좋을 까 생각하게 되었다. Call of the wild 단어 찾을 때도 프로그래밍의 힘을 빌려 단어 작업을 했었다. 삼면 일을 하면서도 '아, 이 간단한 일을 이 복잡한 회로인 두뇌 하나를 사용해서 처리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며, 이를 자동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삼면 자동화를 프로그래밍하며, '나는 이 분야로 가고 싶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3) 그런데.
그렇게 컴퓨터쪽으로 마음이 기울 때 즈음, 어제 개리옥 교실에 있는 라바램프를 봤다. 유체의 불규칙한 대류현상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지겹고 어려운 실험과정을 알면서도. 아직 내 피에는 물리가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컴퓨터를 잘하는 물리학자가 되어야 하는건지, 물리를 좋아하는 프로그래머가 되어야 할 지 모르겠다. 물리 이론 분야는 정말 체계적이고 신기하지만, 그에 따라오는 실험은 정말 힘들고, 발생하는 수입도 크지 않다. 반면에, 컴퓨터는 아직도 대우가 좋고 확장분야도 넓으며, 무엇보다 안정적인 가정을 차리기에 적합한 직종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프로그래밍에 재능을 찾지 못했고, '컴퓨터 분야의 정말 비상한 천부적인 천재는 따라가기 힘들다'는 이야기에 아직 망설이고 있다. 지금까지 쌓아온 물리 기초도 좀 아깝기도 하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까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