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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내지 않는 것은 겁많은 것이다
    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를 써보자 2023. 9. 17. 08:00

    기숙사 옆방이 늦은 밤 너무 시끄럽게 군다. 소음 때문에 잠에 못들고 있다. 말은 안하지만 내 룸메도 계속 뒤척이고 있다. 가서 화 한번 내면 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동아리끼리 회식을 갔는데 우리보다 늦게 온 테이블에 음식이 먼저 나온다. 동아리 부원들은 배고파한다. 가서 왜 우리가 먼저왔는데 아직 안나오냐 이야기하면 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내 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한 사람이 온갖 흉을 다 본다. 지가 싫으면 말지 왜 자리에 있지도 않은 사람을 굳이 꺼내서 뒷담하냐고 한대 후려 치면 되는데.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다. 불평도 하질 않는다. 이전에는 화를 내는것이 싫어서 안내는 거였다면, 이제는 화내는 법을 까먹어서 못내는 것 같다.

    화를 낼 상황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 신조이지만, 화내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일 때 화를 못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화를 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화를 낸다고 항상 상황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화를 내야 하는 상황임을 알아채는 것도, 그 화를 연기하는 것도 모두 용감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나는 화를 잘 내지 못한다. 내가 당하는 상황이라도 ‘내가 너그러운 사람인 척‘ 이해하는 듯이 넘어가려 한다. 화내고 언성 피워서 사람과 껄끄러워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니고 내 사람들이 당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그들을 보호하고 힘이 되어주기 위해 화를 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화내는 능력’을 기르고 싶다.

    세상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도 일종의 자기 합리화 결과물이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이다. 그럴만한 사정임에도 충분히 그렇지 않게 행동할 수 있었을텐데. 나는 그러고 사는데.

    나는 착한사람 증후군이 심하다. 그 타이틀을 잃지 않으려고  나도 모르는 새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럴 때마다 당하고 사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 그럼에도 소신을 지키는 것이 더 멋있는 것이리라, 자기합리화 하는 내 자신이 밉다. 일부러 나쁜사람이 되는 것에 익숙지 못하다. 착하게 당하고 사는 게 마음 편하다. 이런 내 모습을 바꾸고 싶다.

    왜 나만 아량이 넓어야 하는가? 왜 나만 더 퍼줄줄 알아야 하는가? 내가 더 큰사람이 되면 사회가 바뀌는가? 나를 만만하게 보기만 할 뿐, 그들이 바뀌는 것은 없다. 내가 하는 유일한 복수는 ‘좋은 기회를 주지 않는것’ 밖에는 없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보다 강자의 위치에 서야 한다. 게임을 내 쪽으로 유리하게, 그래서 그들이 타산적 이유로 스스로 굽힐 수 있게 되길 바라며 나는 열심히 당하고 산다.

    내 개인이야 그렇게 비굴하게 살면 된다. 그런데 내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할 때가 문제다. 어떠한 일에 대표로 총대를 메는 일을 가끔 한다. 그럴 때면 내 사람들을 대표하여 강한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개인일 때는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들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내 사람들을 위해 나쁜 사람을 자처해야 할 때, 그럴 때 강한 사람, 믿음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때론 정말로 용기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화 대신 침묵을 사용하고 만다. 말없이 째려보는 것. 아무말 안하는 것. 그리고 내 의견을 단단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 내 딴에선 “점잖은 사람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끝끝내 하는” 행동을 연기한 것이다. 그게 더 무섭지 않나? 라고 생각하지만, 불같이 화내는 것을 못하기 때문이 크다. 이런 연기를 할때면 진짜로 짜증이 뒤늦게 몰려온다. 메소드 연기인건가?

    나도 한번 소리 꽥꽥 질러가며 온갖 인신공격해가며 무논리로 싸워보고 싶다. 그렇게해서 화가 좀 누그러진다면. 그렇게해서 상황이 좋아진다면. 아니, 상황이 안좋아진다고 해도 한번 해보고 싶다.


    방금 옆집을 두들기고 왔다. 고작 한 것이라곤 꾹꾹 눌러 말한 “너무 시끄러워요”와 그 앞뒤로 5초씩 째려보기가 전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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