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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넘어지면 다시 못일어나는 습관이 생겼다나의 글, 나의 노래/감자 글 2023. 5. 3. 03:56
글을 쓰고 싶다. 써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들었지만 정작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 지는 정해지지 않았었다. 나의 슬픔에 대해서든, 나의 생애에 대해서든, 어떤 것이든 쓸 것은 있지만, 지금 써야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왜 펜을 잡았는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18세에 이룬 작가로서의 성공이 내심 부러워서?
나는 천재가 되길 바랐다. 무슨 일을 하던 두각을 나타내는데 힘이 들지 않는. 적당히 자신이 열중한 만큼 하다보니 자신을 따라올 자가 없는, 그런 인생. 쟁취하려 하지 않아도 이미 쉽게 손뻗어 닿을 거리에 있는, 쉬운 인생.
어릴적엔 뭐든지 조금만 하면 다른 이들보다 쉽게 앞서나가는 것이 당연한 나였다. 그 때는 내가 무슨 분야를 골라야 할 지 어렵게 만든다면서 불행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그것도 딱 중학교때까지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나는 그 어느것도 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이 집단에서는 평균, 혹은 그 이상 이하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우물 밖을 빠져나옴과 동시에 많이 방황했다.
내가 어느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은 패배감을 인식하자, 나는 움츠러들었다. 학창시절이란 본디 쉼이 없었기 때문에, 혹은 지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쉬지 않고 결과를 내고 노력해야 하는 굴레가 두려웠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간당간당하게 따라갈 뿐, 여유가 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돼, 생각하면서도 내 위치를 직면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한번 넘어지면 다시 못일어나는 습관이 생겼다. 아둥바둥 비등비등하게 뛰다가 넘어졌을 때의 그 철렁함은 내 세상을 뒤흔든다. 쉬지않고 뛰어도 따라잡을까 말까 하는 그 레이스에서 점점 옆 선수들이 앞질러나가는 것이 느껴지는 그 고통도 참기 어렵지만, 어쩌다 넘어져버릴 때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흙먼지 속 잠시 멍하니 앉아 상황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일어나 아무일 없었듯 뛰려 해도, 뛰어지지 않는다. 다시 열심히 뛰면 뭐해, 따라 잡질 못할 격차가 이미 벌어졌는데. 두 발에 불이 나게 열심히 내저어야 뒤쳐짐을 면하는데, 따라잡는 건 글렀어. 이미 결과가 나온 레이스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절룩거리는 발목은 속도만 더디게 하고, 내딛을 때마다 욱신거린다.
게다가 인생은 하나의 레이스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이거를 두번 뛰든 세번 뛰든 어쨌던 넘어가야 하고, 시계는 멈추지 않고 흐른다. 이 레이스가 끝났다고 해서 그 다음 레이스에 의기투합하여 다시 잘 뛸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나만의 페이스대로 잘 가기만 하면 돼, 라고 스스로 도닥여보려 해도, 남들이 겅중겅중 잘 뛰어만 가는 모습을 보면 내가 이 길을 따라서 가는게 맞나 싶다. 누군가의 뒤꽁무니만 보고 여생을 달려가는 것이 그리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언제부턴가 나는 모든 것에 느리다는 것도 깨달았다. 과제하는 것도 시간이 배는 걸리고, 과제에 허덕여 살다보면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시험 공부도 매한가지. 개념 한번 훑는 데도 시간이 벅차다. 어찌 다들 개념도 다 마스터하고 문제풀이까지 다 준비할 수 있는지.
나의 아집에서 오는 미련함을 탓하기도 했다. 본디 온전히 내 힘으로 해내야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내 완벽주의 성격이 내 발목을 잡는 것 아닌가 하고. 숙제 적당히 베끼고, 족보도 받아서 풀고, 학원도 가고.. 이런 모든 것들이 정정당당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뒤쳐지더라도 우직하게 내 힘으로만 한 발자국씩 내딛는 것이 한편으로 내 소신을 지켰다는 뿌듯함을 주었다. 지금까지 소신을 지켜왔다는 것을 폐기하고 실리를 택하자니 마치 죄악에 굴복하는 선과 같은 느낌이 들어 결국 끝까지 놓지 않았다.
때론 고등학교는 이런 핑계마저 허락하지 않는 가혹한 곳이었다. 모두들 그 어느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나를 앞질러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뜩이나 키도 작은데 굳이 농구를 하겠다고 덤비는 미련한 놈이 되어버렸다.
나는 고등학교를 나와서 '최고의 삶'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한풀 꺾여서 그런 것이기도 하고, 중간에 익숙해져 있었다. 항상 열등감에 파묻혀 사는. 때로는 최초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 누구도 가지 않는 길에 발을 내딛었다.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어떻게든 '나는 뒤쳐진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었다'던지, '난 남들과 다르게 걷고 있다'던지 자위하며.
하지만 그 어느 길을 가도 똑같은 레이스는 항상 있다. 내가 열심히 하다보면, 잘하는 사람들의 그룹에 속해 레이스를 하게 되고, 나는 또 넘어진다. 그럼 난 또 뒤돌아서서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하고 다른 길을 찾으려 한다.
한번에 큰 계단씩 뛰어넘으려 하는 내 욕심이 실패를 부른 것 같기도 하다. 이것저것 다 하나씩은 돌을 쌓고 싶은 마음에 돌을 한 아름 들고 가지만, 이내 그 어느 돌도 성공적으로 올리지 못한다. 와르르 쏟고 만다.
그럼 나는 바뀌어야 하는가? 타협해야 할 때는 타협하고, 적당히만 욕심부리며 살아야 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타협을 하다보면 끊임없이 타협하게 되고, 어느순간 소신따윈 없는 기회주의자가 되어있을 것 같다. 욕심을 부리는 것도, 그것을 포기한다고 해서 나머지를 더 열중할 자신도 없다. 오히려 여러 개를 동시에 모두 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름의 자부심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난 그냥 내가 원하는대로 살란다. 이렇게 살다 불행해지면 내 탓을 하고 폐인이 되어버리지 뭐. 그것이 내 운명인가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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