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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 2022. 6. 28. 08:52

    2022/3/31 01:59

    난 누군가 나에게 지식을 물어보는 순간들이 싫었다. 그럴 때마다 난 좀 방어적인 태도로 소극적으로 설명해주곤 했다. '아 그거? 그냥, 뭐 그런그런그런 거야.' 누군가는 지식의 허영이라고 표현한, 나의 퉁명스러운 태도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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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지식 정도를 원치 않게 드러내게 된다. 누구나 지식의 짧음은 숨기고 싶지 않은가? 내가 이미 알고 있었으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데, 모르면 '얜 이건 모르네, 얘의 깊이는 이 정도였네' 라는 식의 은근한 평가를 받는 것이 싫었다. 그들이 궁금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내 개인 정보가 털린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그 지식을 알았다고 해서 으스대길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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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 내가 이러쿵 저러쿵 궁리를 하며 brain power를 써야 한다. 혹자는 한 개념을 완전히 이해했다면 동네 할머니에게도 그 개념을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한 분야의 정확한 개념을 정확한 용어 없이 보편적인 어휘들로 표현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 의미를 왜곡시킨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를 최대한 왜곡하지 않으면서 정보를 최대한 쉽게 전달하려고 한다. 이 과정은 나에게 매우 어렵다.
    '적당히 설명해주고 넘어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깊게 물어본 것도 아닐텐데.' 하지만 그 대화가 이어지다 보면 처음에 했던 비유에 상황들을 끼워맞추며 설명을 덧붙여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나의 설명은 기이한 궤변으로 변하게 된다. 하여간 짜증난다. 여담으로, 이래서 난 비유를 매우 싫어한다.
    더욱이, 물어본 문제가 한 분야의 최전선의 주제이면서 그 분야의 알파벳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정말 답이 없다. 단 하나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숫자도 10까지 못 세는 사람에게 리만 가설을 설명하라 하면, 할 수 있겠는가? 그 지식의 갭이 나를 엄청난 시험에 몰아넣는다. 모르는 건 쟨데, 왜 내가 힘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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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보통 '설명하기 싫다'고 하지 못한다. '난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넌 지식을 갖고 있는데 굳이 설명을 하지 않겠다고? 아주 지적 허영에 쩔었구나? 그냥 설명해주면 안돼?' 라는 식. '설명해주면 뭐해, 이해도 못할텐데.' '그거 나 무식하다는 거냐? 가방끈 길면 그렇게 사람 무시해도 되는거야?' 라는 식. '너가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지. 그래야 그 지식을 진짜 알고 있는거지. 솔직히 말해, 잘 모르는구나?' 라는 식. '그거 너에게 너무 어려울텐데, 이거 먼저 찾아서 이해해봐.' '음... 그것까진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 그냥 그것만 살짝 설명해주면 안돼?' 라는 식. 씨발 개같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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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게 제일 짜증나는 부분이다. 난 수고스럽게 설명했는데 물어본 사람이 듣고 '아 그런갑네' 하고 적당히 흘려 듣고 '궁금증 해결!' 하듯 종결시켜 버리면 난 아주 큰 배신감을 느낀다. 난 이 대화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결국 난 '잘 설명해주는 구글'이 되어 '사용'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오직 그 좋으라고 내가 이렇게 내 치부를 드러내며 설명을 해야 했던가? 찾아보려는 생각도 안하면서 원하는 것을 쉽게 얻으려하는 아주 괘씸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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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싸가지 없게 설명하기 싫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난 결국 대답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난 내 지식을 공유하는데에 있어 일절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보람? 우월감? 그딴거 아무것도 없다. 그냥 저 사람이 나에게서 지식을 원했고, 나는 그에 넙죽 엎드리며 지식을 대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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