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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명, 훈계에 관하여
    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 2022. 6. 24. 16:02

    나는 변명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변명을 듣는 것을 워낙 싫어하기 때문이다. 변명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정말 어려 보이고 생각이 짧아 보인다. 내가 스스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 너무 싫어 변명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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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누군가 나를 혼내려고 들 때, 사실 혼날 상황이 아니었더라도 앓는 소리 일체 안하고 그 사람이 어떤 훈계를 하려 하는지 듣는다. '오냐 함 혼내봐라' 이런 느낌은 아니고, '아 이래서 저 사람이 나한테 싫은 소리 할 정도로 화가 났구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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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낼 때 아무 변명도 하지 않으면 혼내는 것도 금방 끝나는 법이다. 괜히 변명했다가 화를 돋구면 그걸로 불씨가 불이 붙어 더 큰나게 혼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변명하지 않고 그냥 듣는 것이 가장 좋은 것으로만 알았다. 군대에 오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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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에 와선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고 체력적으로도 힘들다 보니 실수하고 미숙한 행동들을 쉬이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지마''그리로 하지 말고 이리로 해' 등등의 이야기를 사회에서 듣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듣는다.
    내가 혼날 때는 아무 변명도 안하니깐 혼내는 사람 입장에선 번번이 명백히 내가 잘못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니 나는 잘못을 엄청 많이 하는 문제아로 보이나보다. 군대에서는 어제 자기 전 본 사람 오늘 눈뜨면 또 보니깐 이미지가 정말 '착착' 쌓인다. 그게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태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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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과 오해는 소통의 부재에서 온다는 말이 있다. 내가 변명을 일체 하지 않는 것이 혹시 사람들과 오해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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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혼을 낼까?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동기는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목표는 이해할 만하다. 분명 혼내는 사람은 흔히 선임이거나, 선생님이거나, 웃어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보다 보는 시각이 넓다는 점에서, 상황을 주축이 되어 끌고간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우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훈계'는 필요한 행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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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혼나는 입장에서는 '훈계'라는 행동은 context 보다는 더 큰 것이 자신을 압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로 공포, 죄송스러움, 미안함. 이런 감정을 심어주는가에 따라 '혼냄'과 '일러줌'이 구분된다. 그 분위기는 청자의 misbehave의 심각함을 전달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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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방법은 1. 자제력이 부족한 아이들, 2. 아주 큰 실수를 한 사람, 3.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에게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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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번은 잘 이해가 될 지도 모른다.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이라 공포를 일으키는 상황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는 아이에게 어떤 점을 잘못했는지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이는 좋지 못한 결과를 예상하고가 아니라 이 '공포스러운'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침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마치 길을 가르쳐줄 때 방향을 가르쳐주기 보단 가지 말아야 할 방향에 늑대를 묶어두는 것과 같다. 결과적으로는 훌륭한 outcome을 가져오겠지만, 1.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고 2. 공포,지위 라는 무기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 2번, 3번은 확실히 잘못된 사용법이다. 충분히 이성적인 대화로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 공포를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반감만 가져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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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방법이 맞는 것일까? 더 잘 전달하기 위한 도구가 오히려 배 보다 큰 배꼽이 되어 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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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혼내는 것은 어찌 보면 잘잘못을 따지는 동시에 상황이 잘 풀리지 않는 답답함을 표출하는 이기적인 행동일지 모른다. 내가 맘이 들지 않다는 감정을 혼냄으로써 푸는, 삭이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한 소리 하면 속이 시원한 기분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혼나는 사람에게 감정 쓰레기를 쏟아버리는 것에 불과하므로, 정말 이기적이고 공동체적이지 못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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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조곤조곤 조리있게 잘못을 따지는 것이 더 인자한 방법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화를 내는 경우는 1. 감정이 자신을 압도하는 경우, 2. 이 방법이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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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인생의 문제들을 짚어나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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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에게 표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불편하게 대하고 나쁘게 대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푸는 아주 나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나는 주로 잠을 잔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꾹 참았다가 일찍 잔다. 그러면 그 다음 날은 좀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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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사람과 그 사람의 행동을 구분해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말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받아들일 때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이미지를 만들어나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면 그릇된 행동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그 행동을 만든 사람을 질책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도 써 있듯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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