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3 01:33
어제 오늘 해서 여러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처음 뵙는 자리에서의 어색함은 언제나 적응하기 힘들다. 어색한 정적이 흐를 때면 나는 내가 말을 꺼내서라도 오디오를 채우는 편이다. 하지만, 나보다 더 활달한 사람이 있으면 나는 오직 듣는 편이다.
처음 만난 자리가 으레 그렇듯, 대부분 표면적인 이야기만 한다. 나는 누군가 이야깃거리를 꺼내면, 가만히 듣고만 있는다. 한 귀로 들으면서, 사람들을 관찰한다. (그렇다고 그렇게 많은 정보를 알아내지는 못한다. '저 사람은 대화가 별로 재미없구나' 와 같은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잠자코 듣는다.) 말하는 것 보다 듣는 것을 더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듣다보면, 왠지 모를 소외감이 밀려온다. 이 대화를 듣고 있지만, 대화에 속하지는 않은, 그런 기분. 그럴 때마다, 나는 새 인간관계를 위한 이런 반복되는 관례(?)에 피곤함을 느낀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교적이라고 말한다. 아마,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때 가끔 내가 icebreaking 을 할 때를 보아서 그런 것일거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발 넓히는 것을 정말 피곤해한다. 새로운 사람 만나서 그 사람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입력해야 하고, 뭘 싫어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어떤거를 배려해야 하는지 어떤 것은 조심해야 하는지 다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이 정도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기 보다, 이미 초기 정보가 어느정도 쌓인 사람들과 공감대 있는 대화하는 것이 훨씬 좋다.
나는 내 인간관계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 대해 나와의 심리적 거리를 매번 가늠하는 편이다. 이 사람이 나를 피한다거나, 나와 가치관이 안맞는다면 조금 거리를 두고,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면 더 가깝게 두는 식이다. 이 부계를 읽는 인원도 아마 가장 가까운 원 안에 포함된 사람들일 거다. 그리고, 아무리 가까운 원 안에 있는 사람이라도, 이 사람의 속이 투명하게 보이지 않으면, 다시 말해 '이 사람이 이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겠구나'가 가늠되지 않으면 거리를 더 둔다. 혹자는 이를 '선긋는다'라고 느껴 불쾌해하거나 섭섭해하기도 하겠지만, 이를 보고 내가 그만큼 인간관계에 있어 신중한 성격임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무튼 나는 내 이런 인간관계 알고리즘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운 정보를 쌓아가는게 골치아프고, 가까이 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여서이다.
내가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은, 앞에서 서술한듯이 속이 훤히 보이는(조종할 수 있을 법한)사람을 말하지 않는다. 이는 필요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일 수록 나에게 귀한 사람이니깐, 더욱 배려해주고 싶은 마음에 속을 항상 가늠하는 것이다. 내가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은, 나에게 스승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대화를 할 수록 내 가치관에 변화를 만들어주는 사람. 항상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어주는 사람.
이런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일단, 새로운 사람과 친해져야 하고, 이 사람과 가치관과 같은 깊은 이야기를 할 정도로 오래 알고지내야 한다. 허탕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다들 그런 토크 자체를 싫어하고 골아파한다.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깊이가 (비교적) 얕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Z 세대들이 인터넷을 통해 말초적 감정에 중독되어 깊은 고뇌를 더욱 싫어하게 되어 그런 것 같다. 그나마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내가 보았을 때 내가 배울 점이 하나라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고르고 골라 곁에 두다보니, 자연스럽게 발이 점점 좁아진다. 새로운 스승을 찾으려고 노력해도, 다들 초면엔 아주 표면적인 이야기만 하니 별로 그런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 말하기 싫어진다.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듯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안까봐도 알맹이가 없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정말 거리를 두고 싶어 미치겠다.
이런 사고 방식은 나 스스로를 내수적이고, 엘리트주의에 매몰된, 깍쟁이같은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절대 표정에서도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정말 '내가 너와 거리를 두고 싶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 정도가 아니라면.
더욱이 요즘은, 내가 곧 군대를 가게 되어, 지금 만나봤자 깊게 성장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더욱 그 의미를 잃고 있다. 룸메가 친구를 더 사귀고 싶다고 그래서, 자리에 가주기만 하고 슬그머니 빠져나오는 식으로 하고 있다. 아님 그냥 끼니 때우려고 안주에 집중하거나.
차니가 한 때 말했듯이, 인간관계에 있어 시간문제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침전하여 더 고민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