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자립. 자유.
    나의 글, 나의 노래/감자 글 2023. 12. 28. 04:22

    저번주, 문득 유튜브 앱을 지웠다. 이 시각적 정보의 홍수에서 어떻게든 숨쉬려 수면을 향해 고개를 처들어 내밀었다. 


    유튜브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간간한 취미들을 유튜브 속에서 찾았고, 다양한 지식을 얕게 섭렵하였다. 버스를 기다리며 눈을 둘 곳을 찾았고, 라면이 끓는 동안 시간을 때울 개그 프로를 찾았다. 적재를 알게 했고 야간작업실을 알게하였으며, 침착맨을 알게 했다. 

     

    또한 나는 유튜브 속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내 고등학교 생활 중 새벽잠을 희생했고, 시험공부 시간을 허비했으며, 같은 지식을 영상으로 얻느라 책과 멀어졌다. 영상을 보느라 글을 쓰지 않았고, 영상을 보느라 기타를 연습하지 않았다. 

     

    유튜브는 거대한 서점과 같은 곳이다. 끊임없이 생산되는 책들을 트렌드에 맞추어 진열해둔 곳. 우리는 새로운 지식을 찾으러 서점에 가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보단 세상이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도 모르게 그것들을 원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다시 트렌드를 공고히 하는 한 유저가 되고, 트렌드는 아무 이유없이 선회하고 때론 소문없이 소멸한다. 물을 마시려 찾은 강 주변의 인파가 강의 물길을 바꾸고 있다. 플랫폼은 흐르는 듯 흐르지 않는 고리형 강물이 되었고, 우리는 에버랜드 아마존 어트랙션마냥 끊임없이 타고 논다.

     

    요즘 유튜브는 딱 현대 사회에 필요한 것들로 꽉 들어차있다. 지하철에서 잠깐 서서 볼만한 낄낄거릴 소재들. 인생의 무력감을 해소시길 자기계발 고양 컨텐츠들. 과도하게 성적이고 미필적 고의로 과격한 영상들. 우리는 유튜브에 들어가 '효과 빠른 유희'를 찾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유튜브를 망쳤다. 아니지, 우리가 원하던 대로 만들어버렸다. 내 발에 딱맞는 신발은 벗어지지 않는다.

     

    릴스와 쇼츠가 일반 유튜브 영상보다 추한 점은 내가 그다음 볼 영상을 고르는 것이 일체 아니라는 점이다. 알고리즘의 오마카세에 전적으로 내자신을 내던지는 이 폼은 내 스스로 수갑을 차고 목줄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스스로 <스파이더맨2>의 옥토퍼스 박사 같다고 느꼈다. 그는 인공태양을 통해 유한 에너지로부터의 자유를 꿈꿨다. 하지만 그는 이를 맛보다가 기계 사지 통제 중추를 태워먹었고, 결국 기계 사지에 정신의 주권을 빼앗겼다. 그는 한바탕 고압전류에 구워지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만든 강제 종료하기 위해 인공 태양을 수장시키며 최후를 맞는다. 

     

    옥토퍼스 박사가 기계 사지를 만든 이유도 액자식 구성이다. 무한에너지를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기계 사지는 결국 통제불가능한 도구였다. 그는 마지막 붙잡은 이성으로 그 도구를 통해 자신의 과오를 수습했다. 

     

    눈 앞에 주어진 큰 도약점을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을 깨닫고 이를 과감히 포기했다. 세상은 무한한 에너지를 얻지 못했지만, 적어도 멋모르게 흉내내다 멸망하지는 않았다.


    흔히들 이와 같은 '퓨즈 끊어짐'을 '디지털 디톡스'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행동으로 계정 삭제, 앱 지우기 등이 있다. 이는 자신을 잡아먹는 기계사지를 벗어 던지는 행위이다. 통제하지 못하는 원천을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심하게 요동치는 위험한 외나무 다리를 걷어차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조금 색다른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이 미친듯이 흔들리는 다리에 굄돌을 좀 놓으려 한다. 내 균형감각과 반사신경으로도 넘을 수 있을 정도로만 흔들리는. 말하자면 늑대 목에 목줄을 매는 것이다. 유튜브가 내 발목은 물지 않도록 입마개를 씌우고, 원하는 만큼만 입을 벌리게 할 것이다. 

     

    유튜브에 내가 휘청이는 이유는 추천 알고리즘이 도리어 나의 정보 선택의 주도권을 빼앗기 때문이다. 유튜브는 굉장히 혹할 법한 영상들을 찾아와 대령한다. 유튜브 그 자체는 사용자가 오래 머무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므로 '사용자에게 좋은 것' 보다는 '사용자가 쉽게 누를만한 것'을 추천이랍시고 대령한다. 우리를 머물게 하기 위해 맛좋은 미끼를 계속 던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 미끼가 샘솟는 밥인줄 알고 치히로의 엄마아빠마냥 이 곳에 계속 머무는 것이다. 이 이해관계가 어긋나기 때문에 우리는 주도권이 있는 알고리즘에게 무릎꿇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의 적은 알고리즘이다.

     

    두번째 이유는 그 끝이 정해져있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원하는 만큼 볼 수 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고 있게 된다. 모든 것은 적당히 해야만 한다. 무한스크롤 같은거 다 버려야 한다.

     

    우리가 알고리즘을 조련할 수 있을까? 시도해봤으나 쉽지 않다. 첫째 시도: 일련의 익스텐션들을 통해 유튜브를 홈이 아닌 구독 영상 탭으로만 볼 수 있게 해보았다. 단점은 유튜브 앱에서는 이런 익스텐션을 사용할 수 없어 통제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댓글창 옆으로 추천영상을 소매넣기 한다는 것. 둘째 시도: 유튜브 계정을 여러 개 파서 구독목록을 경향성 짙게 배열해보았다. 이 방법대로라면 한 계정을 통해선 알고리즘의 눈에 특정 분야 처돌이로 보일테니 다분히 의도한 구독취향대로만 추천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짙게 설정해도, 구독 수를 늘려 알고리즘의 정확도를 상향해도, 중간중간 생뚱맞은 말초적인 영상을 빠짐없이 문틈사이 삐끼던지기 하므로 빈틈공략에 함락되었다.  셋째 시도: 통제할 수 있는 대체 플랫폼을 찾는다. 하지만 유튜브가 워낙 주류이고 그 데이터베이스도 방대해서 비등한 대체재를 찾기 어렵다.

     

    내가 유튜브로 발걸음하는 근본적이고 건전한 이유는 각종 분야에 대해 견문을 넓히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음반이 발매 되었다던지, 새로운 커피 챔피언의 인터뷰를 본다던지 하는 정보습득의 창구로 사용한다. 다만 이 창구에 군것질 거리가 너무 많고 사장님이 미친듯이 들이밀을 뿐. 

     

    알고리즘은 정보 탐색에 있어 나보다 탁월하기 때문에 사용한다. 트러플을 찾기 위해 후각 좋은 돼지를 풀어놓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는 돼지가 다른 것 말고 트러플을 찾게 해야지, 돼지가 찾아오는 것이 트러플이라고 무턱대고 먹으면 안된다. 알고리즘이 가져다 주는 정보는 마치 깊은 강과 같아서 자칫 잘못 타면 휩쓸려 내려간다. 그래서 일단 강에 댐을 만들고, 구멍을 하나만 뚫어 수도꼭지를 달 것이다. 원할 때만 물이 졸졸 흘러나올 수 있게. 

    내가 생각한 방법은 뉴스레터이다. 말하자면 적당히 조련된 알고리즘에서 인간이 하나하나 검수하고 절제해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큐레이팅이라고 부른다. 커피 원두에 비교하자면 핸드피킹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무에 매달린 모든 열매를 떨궈 커피열매를 수확하는 것이 아닌, 적절히 익은 것만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따는 것이 핸드피킹 기술이다. 품이 많이 들긴 하지만 그만큼 최종 상품의 순도를 높인다.

     

    알고리즘이 큐레이팅에 실패한 지점은 그 불순한 상업적 저의에 있다. 그것으로부터 대항하는 힘을 가지고 싶다. 알고리즘이 떠먹여주는 세상에서 숟가락을 드는 자유를 쟁취하겠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