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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군에 대하여
    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를 써보자 2023. 9. 4. 08:00

    내가 군대 가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어쨌든 안풀리는 일은 있다” 이고, 가장 크게 체감했던 것은 “하면 된다”이다.

    나는 “하면 된다” 라는 말의 의미를 몰랐다. 해도 안되는 것들이 버젓이 있는데 이런 거짓 암시는 왜 하는거지? 그러다 해도 안되는 것을 깨달으면 얼마나 더 좌절하려고? 나는 이 말을 행군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 마지막 날엔 멀리 훈련장을 나간다. 그 큰 논산훈련소의 울타리를 넘어 다리를 건너고 마을을 지나 훈련장에 간다. 그곳에서 각개전투(일대일 싸움에서 각자도생하는 법)를 배우고 나면 돌아오는 길부터 행군이 시작된다.

    몇키로 걸었는지 생각도 안난다. 한 다서여섯번에 나누어 조금씩 쉬면서 걷는데, 한 라운드가 한 5-6km 정도인 것 같다. 총 20km 정도를 걷는 것이다. 느릿느릿 한시간에 걸쳐 그정도 걸으면 걸을만 할 것 같지만, 훈련하며 쌓인 피로감과 어깨에 매달린 군장과 소총의 무게가 내 발걸음을 짓누른다.

    한 두 세라운드 걷다보면 군장 가방끈이 누르는 곳이 엄청 쑤신다. 총도 더이상 못 들겠는데, 그렇다고 목에 대롱대롱 걸자니 목이 너무 뻐근하다. 군화 신은 발도 살이 밀려 엄청 따갑다. 네번째 라운드부터는 쉬는시간 끝나자마자 그 고통이 시작된다.

    나는 행군을 하며 내 발걸음이 옮겨지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마치 내 하체가 열심히 걷는데 상체가 위에 붙어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제어해서 한발자국 들어 옮기는 것이 아니라, 발이 움직이니깐 앞으로 가게 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 고통을 견디기만 하면 내 발걸음과 시간이 이 행군을 끝내주었다. 걷는 것은 내 힘을 들여 걷는것 같지 않았고, 그 걸음과 고통은 별개의 일인것 같았다.

    하면 된다는 말은 성취에 초점이 맞춰진 표현이 아니다. 이 말을 함으로써 (되건 안되건) 내가 덜 고통스럽게 되는 데에 이 말의 힘이 있다. “하면 이룰 수 있다” 가 아니라, "그까이꺼 그냥 하면 되지“ 에 가깝다.

    세상에 어쩔 수 없이 꼭 넘어야하는 산들이 있다. 그런 산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지레 겁을 먹고 뒷걸음친다. 하지만, 어쨌건 넘게 되는 산이라는 것을 알고 그 과정을 내가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만 알면, 그 고비를 견디는 것은 의외로 버틸만하다. 다시 말해, 하면 된다는 믿음을 자기최면하면 버틸만한 일들이 있는 것이다.

    세상엔 넘지 못하는 산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면된다는 정신을 가져야하는 것은, 우리의 최선을 다해 덜 고통스럽게 살기 위한 지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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