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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었다는 것은 살아남았다는 것?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를 써보자 2024. 3. 2. 00:12
A : 내가 이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해오긴 했는데,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지는 모르겠어. 과연 이 분야가 내 적성에 맞는 일일까?
B : 지금까지 잘 해왔다라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적성이 맞다는 게 증명된 게 아닐까? 지금까지 꾸준히 해냈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해낼 힘이 있었다는 것이야. 즉 지금까지 정진해서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곧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뜻이 아닐까?
난 갸우뚱했다. 과정으로 결과를 만들고, 또 결과로 그 과정을 입증하는 듯한, 순환논리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상함을 느낀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과장되게 상황을 만들어보자.
야, 일단 해봐. 해보고 적성에 맞는지 안맞는지 판단해 (...) 거봐, 할 수 있잖아. 넌 그 일에 적성이 있는거야.
야, 일단 해봐. 하다 보면 잘하게 될거야. (...) 잘 안되는 건 (적성이 없어서 그래 가 아니고)너가 노력을 덜 해서 그래. 넌 적성이 있는데 노력이 부족한거야.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위에서 말한 '잘해왔다면 적성이 맞다는 것' 이란 논리는 '노력의 경중'과 양립할 수 없다. 내가 하던 일에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이것이 노력이 부족해서인지 적성에 맞지 않아서인지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위의 논리라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 하고 있지 못할 때 하루 빨리 그만둬야 한다는 말이 된다. 내가 열심히 해서 극복하지 못하는 일들은 내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니깐. 하지만 노력의 경중의 문제라면 성공할 때 까지 다시 도전하다 보면 결국 성공을 맞이하고 나의 적성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적성이라는 것이 내 노력에 따라 오락가락해도 되는 것인가? 혹은, 노력도 적성의 일부분인가?
적성이 있는 분야라면 노력을 덜 해도 술술 풀려야 한다. 적성이 없는 분야라면 아무리 노력해도 잘 해내지 못해야 한다. 하지만 노력이라는 것이 참으로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이라, 내가 넣은 노력이 얼마나 severe 한지 알 수가 없다. '같은 노력을 들였을 때' 라는 상황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지금 넣은 노력이 어떻게 다른 사람이 넣은 노력보다 많다고 할 수 있는가? 비교가 불가능한 value 이다.나는 단언한다. 특정 분야의 적성이란 건 없다. 오직 숙련만이 있다. 우리가 한국말을 능숙히 하는 건 한국어에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저 한국어를 많이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떠한 일도 처음 하면 못하는 게 당연하고, 배우다 보면 잘하게 된다.
우리의 적성 내지 재능은 단 두가지가 있다. 그 첫째는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변화할 점을 기민하게 감지하는 능력. 흔히 말하는 일눈치. 이 것만 있으면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배우고 실수를 덜할 수 있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적성'으로 보이게 된다. 두번째 재능은 오랫동안 노력을 붓는 것을 참아내는 능력이다. 흔히 말하는 끈기이다. 끈기는 근육과 같아서 하다보면 는다. 같은 나이 또래에 끈기가 더 있는 사람은 같은 나이를 사는 동안 참을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이 두 가지만 있다면 분야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몸담고 싶은 분야를 골라서 이 두 재능을 붓다보면 최고는 아닐지라도 중상급정도로 잘하게 된다. 분야의 최상이 되는 것은 진짜로 운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즉, 한 분야의 탑을 바라는 게 아니라면 어느 분야든 이 두 재능으로 먹고 살 정도로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 원하는 분야를 하면 된다.
나는 한 분야에 오름에 있어 재능은 키높이구두, 노력은 미동나사, 운은 조동나사라고 생각한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시작이 수월하다. 하지만 운이 좋은 사람은 크게 크게 오를 수 있다. 운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은 미동나사를 열심히 돌려 따라잡을 수 있다.작가의 말
흔히들 인생을 수직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죠.
다음 글에서는 제 목표가 오르는 것이 아님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나의 글, 나의 노래 > 에세이를 써보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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