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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커피 탐험
    나의 글, 나의 노래/에세이를 써보자 2024. 3. 1. 23:23

    나는 드립커피를 군대에서 배웠다. 참으로 요상한 경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군복무를 육군 통신병으로 지냈다. 나는 부대에서 서버 유지보수, 랜선 깔기, 컴퓨터 교체, 프린터 설치 같은 일을 했다. 흔히 말해 인터넷 기사 아저씨다.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한 분대가 되어 군생활 내내 같이 생활했다. 우리들은 아침에 일어나 통신과 사무실에 8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출퇴근형 업무를 보았다. 
     
    우리가 아침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커피 내리기였다. 우리를 통솔하시는 간부님 중에 커피를 물 마시듯 마시는 분이 있었다. 커피가 다 떨어지면 무서운 눈으로 우리를 때릴 듯 쳐다보시는 그런 분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아침에 출근해서 가장 공들여 하는 것이 커피내리기였다. 우리 통신과는 믹스커피 보단 주로 드립커피를 내려 마셨다. 커피 테이블에 커피 드리퍼, 서버, 전동 그라인더 등등 커피 용품들이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커피를 좋아하시는 그 간부님이 사놓으신 것이 틀림없었다.  
     
    추억에 젖을 겸 아침 일과를 정리해보자. 아침에 출근하면 우리는 간부님들께 인사드리고 일사불란하게 사무실을 청소한다. 일이등병은 마대걸레를 빨아와 바닥 물청소를 한다. 전날 마셨던 머그컵들과 커피 드리퍼를 설거지한다. 커피 용품을 씻어오면 상병장급이 커피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린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다가 9시 정도에 일일 서버점검을 한다. 잠깐 쉬다가 어항에 물고기들 밥도 주고, 흡연장 옆 고양이집에 냥이밥이랑 물을 떠다주는 것이 아침 고정 일과이다. 
     
    이렇듯 우리 통신과는 커피 내음이 흐르는 곳이었다. 일이 없을 때면 커피테이블 앞 탁자에 둘러 앉아 쥐죽은듯이 가만히 앉아서 쉰다. 이 때 커피도 마시고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꺼내먹었다. 그러다가 어디 전화기가 고장났다고 연락이 오면 한명 일어서서 갔다오고, 새 컴퓨터 입고가 되면 우루루 나가 컴퓨터 받아오고 돌아오는 식이었다. 간부님이 커피 충전하러 우리가 있는 탁자 쪽으로 오면 우린 바짝 쫄아 눈을 애써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게 생각이 난다.
     
    그것이 나와 드립커피의 만남이었다. 
     


    군대에서는 간부님이 주신 원두대로, 믹서기형 전동그라인더로 갈아서 마셨기 때문에 그 때는 커피의 맛이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커피와 친해져서 전역한 나는 집에 돌아와 한 학기 쉬면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하나 장만해 이리저리 실험하며 마셨다. 이런 저런 원두로 커피가 어떤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내가 본격적으로 드립커피를 즐겨 마셨던 것은 GLPS 때, 그리고 GIST 에 와서부터였다. 집을 나와 다른 곳에서 생활할 때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할 수 없는게 내 커피생활의 큰 걸림돌이었다. 그 때마다 차선책으로 드립커피 도구들을 가지고 다니며 커피를 내려 마셨다. 생각해보면 이 때까지만 해도 드립커피를 자주 마셨을 뿐, 각 원산지마다의 커피 맛을 모르고 내려마셨던 것 같다. 
     
    커피 맛의 중심이 쓴맛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건 제주도에 한 커피숍에서였다. 물회를 맛있게 먹고 나오니 식당 앞에 커피 챔피언이 운영한다는 커피숍이 있었다. 이런 커피도 먹어봐야 커피를 안다 하시면서 부모님이 커피를 사주셨다. 그곳에서 마신 커피는 정말 신기하게 귤꽃의 향이 났다. 그리고 믿기 힘들정도로 쓰지 않았다. 그리고 블루마운틴 커피를 마셨는데 전에 마셨던 커피와는 또 다른 맛이 났다. 고소하면서 중후한 것이 맛이 너무 달랐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캐릭터 강한 커피를 동시에 두잔 시켜 비교하며 먹어본 게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 때부터 나는 드립커피가 증폭해내는 원두의 맛들에 매혹되어 지금까지 드립커피를 고수한다. 


    내 커피 인생에서 그 다음 큰 변곡점은 꽤 최근에 있었다. 커피 그라인더가 신통치 않아서 새로운 그라인더를 큰 맘먹고 샀다. 흔히들 말하기로 커피 경험을 급격하게 바꾸려면 그라인더부터 바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라인더는 커피의 맛을 크게 좌우한다. 커피의 분쇄도가 커피의 추출 시간을 결정하고 그것이 결과물의 맛을 통제하는 데에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좋은 그라인더는 원두를 원하는 크기로 고운 미분 없이 갈아준다. 반대로 값싼 그라인더는 분쇄 크기를 세밀하게 조절하기 어렵고, 특히 원두를 부수면서 나오는 고운 가루들이 많이 나온다. 
     
    새로 산 그라인더가 얼마나 균일하게 갈아내는지 기록해보고 싶어서 실험을 했다. 우리 커피 동아리방에는 가루 크기마다 나눌 수 있는 체가 있어서, 각 분쇄도 구간 별로 커피 가루를 분별해 마실 수 있었다. 나는 날 잡고 갖고 있는 모든 체를 가지고 반나절 동안 커피 가루를 나눠보았다. 결국 이것도 성능이 시원치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각 분쇄도별로 나눈 가루를 가지고 커피를 내려먹어 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같은 크기를 가진 가루를 가지고 내리니 맛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나는 것이었다. 굵은 가루는 성분이 우러나오는 것이 늦어 같은 시간 내리면 신맛이 많이 나고 물이 금방금방 내려갔다. 고운 가루는 반대로 성분이 빠르게 나와 금방 쓴맛이 났고, 물이 아주 천천히 내려갔다.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로는 들었지만, 눈으로 그리고 혀로 느끼니 그 차이가 매우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내 커피 용품에 체 하나를 구비했다. 커피를 갈고 나서 한번 체에 걸러서 고운 가루를 분리해 빼버렸다. 체에 걸러 내려오지 않은, 말하자면 원하는 크기 이상의 원두를 사용해서 커피를 내리니 커피의 맛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원두 포장지에 써있던 커피 노트(커피의 맛을 다른 과일 등의 맛으로 빗대어 표현한 것) 를 이제야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커피에 대해 배워가야 할 것은 많다. 각 원두마다 레시피(커피에 계획된 시간에 정확한 양의 물을 붓는 것)를 알아내는 것, 다양한 원두를 맛보는 것, 블렌드 원두로 맛의 보완을 경험하는 것, 그리고 대망의 로스팅이 있다. 아직도 커피의 맛을 다양하게 탐험할 방법이 너무나도 많이 남았다는 것이 정말로 즐겁다. 커피는 한동안-혹은 내 여생동안- 깊게 즐길 취미인 것 같다.
     

    작가의 말
    자기 직전에 글을 쓰니 자꾸 할 일들에 밀려 글을 쓰지 못합니다. 
    이래서 아침 글쓰기를 실천하라고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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