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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의 생선가게나의 글, 나의 노래/감자 글 2023. 10. 21. 12:55
나는 단상들을 적기를 꺼린다. 단상으로만 남기지 않고, 적당한 깊이를 가지도록 발전시켜 글로 출판한다. 생각을 허투루 흘려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 나의 욕심일 수도 있고, 생각은 본디 깊이가 필요하다는 나의 아집일 수도 있다.
단상들이 머릿속을 끊임없이 스쳐지나간다. 마치 <라이프 오브 파이>에 나오는 것처럼, 나의 배를 튀어올라 지나치는 날치떼의 한복판에 있는 기분이다. 나는 팔을 최대한 넓게 벌려 한마리라도 더 걸리기를 바란다. 그것은 날치 한마리 한마리를 소중히 여김이요, 빠져나가는 날치들에 대한 욕심이자 미련이다.
나는 일단 촘촘한 족대를 강 중류의 급류에 설치해놓는다. 내 분수에 맞는, 좋아하는 종류의 물고기들이 수시로 걸린다. 나는 열심히 족대를 뜰쳐올려 잡은 잔챙이들을 따로 담아둔다.
적당히 잔챙이들이 모였으면 나는 통발을 준비한다. 이 통발에 하나하나 잔챙이를 미끼주머니에 넣어둔다. 통발을 갯바위로 들고가서 깊어보이는 곳에 던져둔다.
시간이 지나고, 또 새로운 잔챙이들이 많이 잡히면 얼른 통발을 힘써 끌어올려 걷는다. 큼직한 생선들을 종류별로 꺼내 아이스박스에 담는다. 꺼낸 통발 미끼주머니엔 다시 잔챙이들을 채우고 바다로 되돌려 던진다.
낑낑 아이스박스를 항구로 옮긴다. 근사한 놈들은 내장 손질을 하고, 별볼일 없는 놈들은 햇볕에 말리거나 잔챙이 통에 다시 담는다. 모두 선별하고 나선 근사한 놈들만 시장에 나가 얼음가판대에 진열한다.
나의 생선가게는 대로변에 있지 않아 찾는 손님이 적다. 으슥한 골목에 가게를 낸 것은 대로변에 가게를 낼 근사한 생선을 잡기엔 가진 통발이 남루하고, 열심히 팔 체력도 없기 때문이다. 내 생선들엔 파리가 날린다.족대로 잡는 잔챙이도 줄곧 비슷하고, 고수하는 통발로 잡을 수 있는 생선들도 매번 비슷하다. 손님이 뜸해 마냥 가판대의 생선들을 파리채질 할때면 새로운 낚시배를 장만해야하나, 하고 생각한다. 양식장을 차릴까도 고민하지만 그래도 역시 자연산이지, 하는 생각이다. 바다가 내 분수에 맞는 물고기를 쥐어주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하루 한두마리 팔아 모은 돈으로 열심히 조업방식을 늘려보려 이것저것 찔러본다. 언젠가 대로변에 당당히 장사할 날을 당겨오는 걸까. 골목에 있어도 손님들이 찾아들어오길 꿈꾸는걸까.요즘엔 가게를 잠시 문닫고 맛좋은 생선 잘잡기로 유명한 옆집 사장님들의 배를 따라 탄다. 그들이 낚아올리는 방법대로 물고기를 낚아본다. 서툴지만 사장님이 가르쳐준 대로 낚아올린 생선들을 품삯으로 받아들고 온다. 얼음 가판대 가장 잘 보이는 데 내려놓고 한두걸음 뒷걸음질해 서서 뿌듯하게 바라본다. 내일도 따라가봐야지, 생각한다.
요즘엔 또 손질방법도 많이 고민한다. 잘 썩는 부위만 도려내고 물에 씻어서 가판대에 올려놓곤 했는데, 이젠 등뼈를 발라내볼까, 하는 생각이다. 내가 원하는대로 손질하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손님들이 간편히 구워먹을 수 있어 더 집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도 가끔씩 옆집 일식집 사장님한테 배워봐야겠다.요즘엔 뱃일 따라 나가는게 재밌어서 생선을 잘 안내놓는다. 가판대의 얼음도 많이 녹았다. 매번 찾아오시는 단골들이 빈 가판대를 보고 혀를 끌끌차고 발걸음을 돌린다. 미안하기도 하고, 죄책감까지도 든다.
나의 본분은 무엇인가. 어부인가, 생선가게 아저씨인가? 어부 일을 하려면 생선가게도 운영해야하고, 생선가게도 어부 일이 필요하다. 손질 일도 꾸준히 해야한다.
수련의 시간동안 단골들이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시 가게 쉽니다’라는 문구를 큼지막하게 종이에 써서 얼음 위에 올려놓는다. 날잡고 통발로 물고기를 열심히 잡아서 문구 종이 위로 산만큼 쌓아두고 가게를 비워두려 한다. 언제 돌아올지는 끝내 쓰지 못했다.작가의 말
이 글이 제 생선가게의 문구종이입니다.
시험끝나면 날 잡고 글을 산처럼 쌓아두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현인들의 수업을 들으러 도서관으로 떠납니다.
돌아올 날짜는 미처 적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배우다 월척이 잡히면 가끔씩 들를게요.
감자의 생선가게 사장 백.'나의 글, 나의 노래 > 감자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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