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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은 집어치우고 당장 철학을 시작하라나의 글, 나의 노래/감자 글 2023. 6. 17. 10:52
시험이 늦은 밤 끝났다. 이 학교는 버스로 통학해야 하는 자취생의 스케줄은 안중에도 없이 시험 시간표를 짠다. 하는 수 없이 도서관에서 밤을 샜다.
나는 서가 사이를 지나며 책 찾는 것을 좋아한다. 재미있어 보이는 제목이 보이면 뽑아서 그자리에서 책을 펼쳐본다. 목차가 별로이면 그냥 다시 꽂아두고, 흥미로워 보이는 대목이 있으면 몇자 읽어본다. 읽다가 다리가 아파지면 앞에 자리잡고 앉아 읽는다. 이렇게 책을 찾으며 서가 사이를 걸어다니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 한 책에 머무는 시간은 적지만, 금방 다른 책을 꺼내서 읽다 보면 생각할 거리들이 머릿속에 쌓이는 기분이 든다.
책을 뽑아 읽다가, 글쓰기의 경험에 관련된 산문집을 빼들었는데, 그 책으로 몹시 거슬리는 인상을 경험했다. 책의 내용들은 하나같이 '느낌 좀 잡아보려 하는 오십 먹은 아저씨의 쥐어짠 지혜' 같은 느낌이었다. 인생의 사소한 조각들에 어떻게든 인문학적 의미를 끄집어내보려 하는 그 옹졸함이 활자 사이로 느껴졌다. 그 불쾌함은 글이 저급해서 드는 그것이 아니었다. 마치 내 글을 읽는 것 같아, 내 글이 이렇게 저급하다는 것을 깨달아 드는 불쾌함이었다.
자신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면 다들 하나같이 자신 목소리가 이상하다고들 말한다. 거울을 통해 보는 자신 모습이 아닌 진정 사진으로 마주보는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다고들 말한다. 난 그 글을 보며 그 감정을 느꼈다. 내 글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인생에 있어 자랑스럽게 깨달은 자랑스러운 혜안들이 결국 '자기 세계에 취해 사는 아저씨가 늘어놓는 이야기'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 와중에 나에게 온 책이 이 책이었다.
<자기계발은 집어치우고 당장 철학을 시작하라> 라는 책이 자기계발서 사이에 꽂혀 있는 게 너무 웃겼다. 보통 자기계발은 어떻게 보던 좋은 것인 줄 알았는데, 이 발상 자체가 새로웠다. 그렇게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책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목적을 고민하지 않은 자기계발을 경계하라는 이야기이다. 요즘 시대에 자기계발을 하는 대부분 의 사람들은 결국 안주하고 있지 않다는 안도감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인생에 있어 깨달음을 얻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 다시말해 진정한 "자기계발"을 이루고 싶다면 - 내부에서 깨달음을 얻어낼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까지 인류가 같이 고민했던 문제들을 듣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 책이 크게 와닿았던 이유는 마침 내가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를 알 것 같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삶의 의미"에 대해서 쓴 글이 있는데, 그 생각을 계속 개진하다가 우연히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해 들었다. 내가 깊게 고민해서 결론내린 것들을 누군가 한번쯤은 고민해보았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고민들을 혼자서 골똘히 고민하지만 말고, 비슷한 주제에 대해 고민한 철학자들을 찾아보는 것도 쉽게 깨달음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이유가 한 사람이 인생에 걸쳐 압축한 지식을 훔쳐먹기 위함이라고 하지 않는가. 머릿속에 드는 질문들을 글로 써낼 뿐만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철학자를 바삐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 글이 조금 더 성숙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꼭 말하듯이 문장 하나하나에 의미를 절제해서 담고 있지만, 때로는 압축적인 문장을 쓰고 싶다. 한 문장에 내 두 문단을 담는, 생각의 깊이를 빠르게 개진하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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